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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 풍경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모스 오즈 지음, 최정수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평점 :
출판사 비채에서 모든&클래식 시리즈 첫 권으로 내놓은 소설이다. 현대 이스라엘 문학의 거장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후보에 자주 오르는 아모스 오즈의 최근작이기도 하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2010년 지중해문학상 외국문학상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텔일란이라는 가공의 마을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이 가공의 마을이 실제 존재하는 곳처럼 다가왔다. 너무나도 멋진 풍경과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곳이기도 하다.
이 단편집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황당한 일들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다룬다. 그들의 행동을 통해 일상의 심리 묘사가 세밀하면서도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이어진다. 풍경 묘사를 통해 드러나는 마을의 이미지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중동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스라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소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아랍인은 <땅 파기>의 아델이다. 이 소설은 이 단편집에서 유일하게 정치적인 색깔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단편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긴 시간을 다루지 않는다. <땅 파기>가 며칠을 다루는 것을 제외하면 몇 시간 혹은 하루 정도의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다. 첫 작품 <상속자>도 불과 한두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 낯선 남자는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라는 알 수 없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내와 헤어지고 노모와 시골집에서 사는 아리에 젤리크 이야기다. 그의 현실을 간결하면서 빠르게 진행한다. 여기에 그 낯선 남자의 등장은 일상의 틈을 미묘하게 파고든다. 마지막 장면은 의문과 여운을 남긴다.
<친척>은 조카 기드온의 방문을 기다리는 길리 스타이너 이모 이야기다. 그녀는 독신 여의사고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만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다. 조카 기드온이 온다고 했다가 도착하지 않으면서 그녀가 느끼는 불안을 행동과 심리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이 사이사이에 조카와의 추억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걱정과 불안과 염려가 뒤섞인 그녀의 행동은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한 일일 것이다. 그 바닥에 깔려 있는 외로움과 추억으로 인한 기대감은 잔잔하게 가슴으로 파고든다.
<땅 파기>는 전직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와 사는 현직 여교사 이야기다. 여기에 같이 사는 아랍인 아델이 등장하면서 가장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장면을 만든다. 그런데 이스라엘 현대사에 무지한 나에게 이것은 아무 느낌도 없다. 단지 늦은 밤 들려오는 소음의 정체가 무엇일지 궁금할 뿐이다. 가장 많은 분량에 가장 많은 인물을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많은 문장 중 “우리의 파괴된 마음을 연상시키는 저 침울한 곡조만 남았겠지”(104쪽)는 노인과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가장 잘 나타내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어 나오는 <길을 잃다>는 유명 홀로코스트 작가의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부동산 중개업자 요시 색슨의 추억과 그 집에서 만난 집주인의 딸 야르데나와의 동행은 미묘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이 집과 작가에 대한 추억은 이 둘 사이를 이어주지만 동시에 다른 꿈을 꾸게 만든다. 이 단편에서 잠시 스쳐지나간 마을 면장 베니 아브니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기다리기>다. 쪽지 하나만 남기고 사라진 아내의 흔적을 쫓고 그녀를 기다리는 그의 행동과 심리는 과거의 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 들려주는 가슴 아픈 사연은 이 부부의 삶이 결코 평온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열일곱 살 코비 에즈라는 마을 우체국장이자 도서관 사서인 서른 살 이혼녀 아다를 사랑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코비와 아다의 한 순간을 다룬 작품이 <낯선 사람들>이다. 순진한 소년의 풋사랑과 의지력 강한 남자에게 약한 아다의 행동이 살짝 엇갈리면서 펼쳐진다. 미숙하고 두렵고 열정과 사랑만 가득한 열일곱 살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용기 내어 한 행동이 미숙함과 어색함 등으로 실패하자 그의 삶은 순간적으로 떨어져버린다. 여기에 아다의 내뱉지 못한 한 마디가 이 둘 사이를 어떻게 만들지 의문을 품게 한다.
화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두 작품 있다. <노래하기>와 <다른 시간, 먼 곳에서>다. <노래하기>는 자살한 자식을 둔 부모가 만든 노래 모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잘 모르는 노래 제목이 수없이 나와 조금 난감하지만 그 부모가 과거의 사건을 잊기 위해 조직한 모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행간에 깔린 상실감은 곳곳에 스며있다. 마지막 작품은 이 단편집에서 유일하게 텔일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아니라고 한다. 동시에 난해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