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마쓰모토 세이초를 검색하니 인터넷 서점에 몇 권 올라와 있지 않다. 동서문학에서 낸 추리문학을 제외하면 태동에서 낸 <검은 화집>과 북스피어의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중,하>가 눈길을 끈다. 그의 이름을 생각하면 너무 적다. <검은 화집>은 벌써 절판이다. 물론 그의 시대는 지금이 아니다. 그의 영향 아래 성장한 다른 작가들 시대다. 그의 걸작 단편 컬렉션을 낸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 요코야마 히데오 등의 시대다. 하지만 헌책방을 돌다보면 그의 소설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모리무라 세이치의 소설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그의 시대가 아니지만 그의 명작은 지금도 출간되고 있고,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 모리무라 세이치와 마쓰모토 세이초를 혼동한다. 왜 두 거장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제대로 읽은 적이 없거나 이름에 약한 나의 성격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의 성격도 있지 않나 짐작해본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두 거장임을 생각하면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인간의 증명>을 예전에 읽었지만 큰 감명을 받지 못한 것이나 세이초의 다른 작품을 읽을 때 마무리에서 아쉬움을 느낀 것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마 앞으로 한 동안은 그렇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제로의 초점> 사실 많은 기대를 했다. 작가의 명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중반에 범인의 윤곽과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범인을 맞추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분명히 아쉬운 작품이다. 하지만 그 사건의 이면을 생각하고, 왜 이렇게 내가 빠르게 범인을 맞추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면 조금 다르다. 그리고 빠르게 읽히는 내용과 전개는 상당히 몰입하게 만든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시대를 감안하면 다른 매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시대 배경은 1957년 겨울이다. 스물여섯 살의 이타네 데이코는 가을에 선 본 남자 우하라 겐이치와 결혼한다. 그의 나이는 서른여섯이다. 나이 차이가 적지 않고 선을 본 후 얼마 되지 않아 둘은 결혼한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이상하고 낯선 장면이지만 그 시대는 그랬다. 우하라는 광고대행사 가나자와 지점에서 근무한다. 결혼하면 도쿄 본사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그런데 우하라가 업무인수인계를 위해 혼다와 함께 가나자와에 간 후 돌아오지 않고 실종된다. 이제 겨우 신혼 한 달만에 말이다. 이 소설은 그의 실종을 둘러싼 의문과 이어지는 살인사건을 뒤쫓는 아내 데이코의 조사 기록이기도 하다.
그 시대의 추리소설이 어떠했는지 잘 모르지만 경찰이나 탐정이 아닌 일반 사람이 탐정 역할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한때 신문기자가 탐정 역할을 주로 맡은 적이 있지만 경찰이 상당히 배제된 경우는 흔치 않다. 그리고 사건 피해자의 아내가 사건을 뒤쫓는 경우는 정말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추어 탐정이라기보다 실종자의 아내로서의 절박함이나 의문이 더 강한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녀의 탐정 역할은 파편적인 정보의 조합을 통해 드러난다. 남편의 과거 행적과 피해자의 이상한 행동이 단서다. 그 단서를 쫓아가면 필연적으로 그 시대의 아픔을 만나게 된다. 그 아픔은 시대가 만들었고,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범인과 동기는 사실 쉽게 중간에 드러난다. 이렇게 간파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사이에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소설들을 몇 권 읽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간에 범인을 쉽게 맞추는 대부분의 경우가 바로 비슷한 구성이나 전개를 가진 소설을 이전에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뭐 대부분은 읽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신기하게 생각하는 경우지만. 그리고 중간 중간 드러나는 시대의 풍경과 삶은 상당히 낯설다. 현재의 일본과 너무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을 제외한다면 한 편의 시대소설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라고 할 정도다. 마지막 장면이 주는 여운은 이것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