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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도쿄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방 여섯 개가 딸린 2층 목조건물이 고구레빌라다. 이 조그만 빌라에는 몇 명 살지도 않는다. 주인인 고구레 영감을 제외하면 3명이 살고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조그만 빌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과 관계를 맺은 일곱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황당하고 변태적인 모습이 보이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그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사랑과 고통과 행복 등이 느껴진다.
의 첫 장면은 조금 황당하다. 일요일 늦은 오후 애인 아키오와 방에서 뒹굴거리며 어디 나갈까 대화를 하는데 주인집 개 존이 짖고 초인종이 울린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마유가 나간다. 3년 전 갑자기 사라진 전 애인 세토 나미키가 싱글거리며 서있다. 그녀 너머 겨우 하반신을 가린 아키오에게 오빠라고 부르면서 넉살좋게 방으로 들어온다. 한눈에 오빠 동생 사이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는데도. 이 기묘한 상황과 어색한 관계는 한동안 지속된다. 이 시간 동안 마유의 심리를 차분하면서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풀어낸 이야기다. 과거의 추억과 사랑과 기억과 아픔, 현재의 감정, 이 뒤섞인 감정 속에 풀려나오는 현실.
<심신>은 광고 문구에 넣은 노인의 섹스 문제를 다룬다. 고구레 영감이 왜 허름한 빌라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섹스에 대한 열망도. 그것은 얼마 전에 죽은 친구 고토와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병실에 입원한 고토가 잠시 외출하여 아내에게 섹스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거절 받은 것을 듣고부터다. 성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섹스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일어나는 조그만 해프닝과 열망은 우리가 잊고 있는 노년의 사랑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얼마 전 뉴스에서 본 노인의 섹스 문제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기둥에 난 돌기>는 어느 날 미네의 눈에 들어왔다. 이 돌기를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남자 성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환상을 같이 보는 한 남자가 있다. 야쿠자 분위기가 나는 마에다다. 이 환상을 통해 둘은 이어진다. 그리고 애견 미용사인 미네를 통해 고구레빌라가 이어진다. 그 매개체는 존이다. 미네와 야쿠자 보스인 듯한 마에다의 조금은 풋풋한 연애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둘이 보는 환상의 원인에 도달했을 때 터져 나오는 아픈 과거는 가슴 아리고 아프지만 결코 무겁지만은 않다.
<검은 음료수>는 마유가 일하는 꽃집 주인 사에키 씨 이야기다. 갑자기 남편이 탄 커피 맛이 이상하다. 비릿한 흙탕물 맛이다. 남편은 늦은 밤에 아내가 잘 때 나가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들어온다. 분명히 외도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남편 주변의 여자들이 용의자가 된다. 마유도 그 중 한 명이다. 이렇게 작가는 그녀를 통해 불안과 걱정이 주변에 어떻게 퍼지는지, 그녀와 남편의 과거 이야기를 자연스레 풀어낸다. 이 이야기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주변 관계들을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구멍>은 한 변태 간자키의 훔쳐보기 이야기다. 그 훔쳐보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것의 즐거움과 감정 전이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가 구멍을 통해 훔쳐보는 대상은 아래층 여대생 미쓰코다. 3명의 남자와 동시에 연애를 한다. 독신남인 그가 보기에 그녀의 삶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훔쳐보기와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감정의 변화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이 시점의 변화는 이전과 다른 고구레빌라의 풍경을 보여준다. 화자를 변화시킴으로써 한 개인이 전혀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는 간자키의 훔쳐보기 대상인 미쓰코 이야기다. 그녀의 현재는 간자키가 본 그대로다. 하지만 과거로 넘어가면 결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온다. 문란했던 여고생시절, 대학시절. 이 생활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들려준다. 그리고 친구가 갑자기 아기를 맡기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흐름은 이 단편의 핵심이다. 그녀의 현실과 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 이 아픔과 상실은 이해할 수 없는 삶일지 모른다. 훔쳐보기를 통해 그녀의 현재를 가장 잘 아는 간자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비록 그의 위로가 새로운 미래를 보여준다고 해도 말이다.
마지막 <거짓말의 맛>은 마유의 전 남친 나미키 이야기다. 사랑했던 마유를 스토킹하는 그를 보여준다. 호기 있게 그녀를 떠났지만 그 주변을 맴돈다. 이때 한 여자가 나타난다. 니지코 씨다. 그녀는 음식의 맛으로 거짓말을 판별할 수 있다. 그녀의 존재는 가끔 꽃집을 통해 드러난다. 나미키를 만난 것도 바로 그곳이다. 거짓말의 맛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해준 음식은 먹지 못하는 그녀의 사연과 나미키의 과거와 현재가 흘러나온다. 이벤트처럼 벌어지는 조그만 해프닝과 고구레빌라와의 인연은 읽는 재미를 준다. 하지만 더 이상의 고구레빌라 이야기는 없다는 느낌을 준다. 더 읽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