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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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이란 이름을 언제부터 인식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예전에 읽은 재일동포 역사학자로 착각하고 있었다. 서경식 선생의 책을 몇 권 사놓고도 그렇다. 아마 이름 착각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분의 역사책은 상당히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인터넷으로 강력 추천을 하기에 주저없이 선택했던 책이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습관 탓에 잊고 있었다. 그러다 재일동포에 서경식 선생의 또 다른 책을 추천한 글을 읽고 이름을 살짝 기억했다. 잘못된 기억이다. 그런데 전화위복이 되었다. 좋은 작가 한 분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집에 있는 책을 찾아 읽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서양 음악 참 어렵다. 고등학교 때로 기억하는데 클래식을 좀 알고 싶어 오전에 방송하는 FM클래식을 켜놓고 공부한 적이 있다. 작가가 한국에 와서 들었다는 그 채널일 것이다. 일요일 오전 노곤한 상태에서 들었던 그 음악들은 좋은 수면제였다.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고 연주자도 작곡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음악들을 아주 열심히 들었다. 그 후로도 몇 년을 들었고, 유명한 지휘자나 작곡가의 음반을 사기도 했다. 그래도 변함없이 몇 곡의 이름만 겨우 기억한다. 뭐 이런 무식한 음악 듣기는 그 후에 재즈나 메탈로 옮겨가기도 했다. 

문화 웹진 ‘나비’에 총 66차례 33회분을 연재한 것을 책으로 내었다. 이전에 비슷한 제목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낸 적이 있다.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이 생겼다. 서양음악과 서양미술은 지금도 나에게 완전히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아마 저자가 수없이 듣고도 몰랐던 말러의 음악이 끌라우디오 압바도가 지휘하는 루쩨른 축제에서 문이 열렸던 것을 생각하면 언젠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보고 듣고 느껴야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수많은 작가들의 멋진 문학적 표현을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책의 전개 방식은 기억과 추억과 서양음악을 같이 융합시킨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에 대한 추억과 기억과 사실을 풀어낸다. 이 기억이 1회분으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2010 잘츠부르크음악제의 경우는 6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거장 고 윤이상 선생의 경우는 4회고, 2010년 말과 2011년 초에 빈에서 보낸 것을 연재한 횟수는 6회다. 이렇게 횟수에 제한 없이 자유롭게 서양음악을 자신의 감성으로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쓴다. 그가 느낀 감정이 솔직할수록 고개를 끄덕이는 횟수가 늘어난다. 표현이 세밀해지고 문학적으로 변하면 부러움이 늘어난다. 앞에서 말한 서양음악의 문이 아직 나에게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한 권으로 서양음악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욕심이 살짝 있었다. 음악에 대한 정보가 가득한 책으로 생각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첫 회분을 읽으면서 단숨에 깨졌다. 서양음악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음악과 관련된 수많은 단상들이 하나의 주제로 꿰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서양음악과의 만남에서 새로운 깨달음까지 다루면서 아직도 부족한 부분을 말할 때 공부가 평생해야 할 것임을 간접적으로 말한다. 이것은 그의 동반자이자 음악교사인 F가 한 음악가의 음악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고 했을 때 더욱 분명해진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보수적인 관객들의 음악 해석이다. 그에게 신선했던 그 작업이 그들에겐 장난처럼 유치해보였던 모양이다. 이것이 과거로 흘러가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이야기에 이르면 아련하고 가슴시린 아픔으로 변한다. 그에게 음악은 행복도 즐거움도 아닌 과거의 악몽이기 때문이다. 음악가에 대한 평가로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면 한 편의 책을 두고 다투었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열정이 있고 이해의 깊이가 있기에 가득한 일이다. 뭐 나의 경우는 그냥 멋도 모르고 싸운 것이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 뮤지컬을 보러갔다. 뮤지컬이 끝난 후 사람들이 앙코르를 외치고 즐겁게 놀았다. 막이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 장면을 보고 이 책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외국에서는 여운을 즐기고자 빠르게 빠져나가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에도 불구하고 바로 나가더라는 대목이다. 우리의 관람문화가 잘못된 것일까? 영화도 자막이 올라오자마자 빠져나간다. 왜 일까? 또 고 윤이상 선생의 이야기를 다룰 때는 예전에 읽은 윤정모 씨의 작품 <나비의 꿈>이 떠올랐다. 그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과 저자와의 만남이 엮이면서 색다른 감상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고백하면 이 책에 나오는 서양음악 중 기억에 남는 제목이 거의 없다. 나의 한계다. 무지다. 하지만 몇 년 전 <노다메 칸타빌레>란 일드를 통해 서양음악의 즐거움과 재미를 누렸듯이 언젠가 서양음악이 한 발 더 다가오는 날이 자주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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