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때는 하루에 세 편의 시를 읽자고 마음먹고 며칠 동안 실천한 적이 있다. 끝내 시집 한 권을 마치지 못했다. 다른 재미있는 소설이 많은데 하면서 미루어뒀다. 사실 일반 독자에 비해 읽은 시가 적은 것은 아니다. 학창시절 박노해와 김남주의 민중시에 충격을 받았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카프 시집과 김수영의 시집을 구해 읽었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버스 안에서 열심히 읽었다. 가장 좋아했던 기형도의 시집도 멋모르고 읽었다. 외국의 번역시집도 몇 권 구해 읽었다. 하지만 이 시집들이 나에게 시로 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 즐거움과 재미를 완전히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시 읽기의 즐거움과 재미는 계속 바라고 바라는 바다. 작년 초에 읽은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서 시와 철학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를 잠시 맛보았지만 어느새 잊고 있었다. 그러다 만난 이 책은 사실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철학과 시의 결합이 주는 즐거움과 재미를 기억하고 있지만 과연 작년 같은 재미를 누릴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저자 김용규의 <다니>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없었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이 두 철학자가 어떻게 보면 비슷한 내용으로 한 권의 책을 낸 것이다. 강신주가 시인 한 명과 철학자 한 명을 연결했다면 김용규는 한 철학을 바탕으로 시를 이해하도록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철학자는 하이데거다. 수많은 시인과 시가 인용되는데 가장 중요한 시인 한 명을 꼽으라면 김수영이다. 그를 가리켜 해방 후 최고의 시인이라고 칭하는 학자들을 자주 만났다. 그래서 그의 시집을 구해 읽었었다. 그런데 왜? 라는 의문부호를 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시가 나의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에게 시는 학교 교육에 의해 재단된 것 외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박노해와 김남주의 시가 머릿속을 강타한 것이 바로 너무나도 쉽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 있구나 하고. 늘 시 이야기를 할 때면 학교에서 배운 것들에 대한 나쁜 기억만 난다. 그때 시의 매력을 제대로 배웠다면 아마 집에 소설보다 시집이 더 많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영화가 별로 재미없었다. 국어 선생하는 친구는 재미있었다고 하는데 나에겐 그 어떤 느낌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의 처음이 바로 이 영화에 대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메타포에 대한 것. 상당히 재미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한 편의 소설처럼 읽었다. 이 분위기는 조금 더 진행되었다. 시 속에 담긴 철학을 뽑아내고,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시를 펼칠 때 아! 하고 감탄도 했다. 거기까지다. 더 깊은 곳으로 나의 사유가 감성이 다가가지 못했다. 한계다. 시를 철학을 통해 쉽게 풀어낼 때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철학자의 단어로 바뀌는 순간 헤맨다. 철학의 벽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나를 넘겨주지 않는 것이다. 아쉽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함을 느낀다.

모두 아홉 장이다. 시란 무엇인가로 시작하여 시인이란 누구인가로 마무리한다. 메타포에서 시작하여 사랑을 말하는데 계속 고개를 끄덕인다. 공감대가 형성된다. 읽었던 시, 몰랐던 시, 아무 느낌 없는 시, 새롭게 다가온 시 등이 저자의 손길에 의해 다른 의미를 띄고 다가온다. 비교적 쉽게 풀어낸 시에 대한 철학들은 잠시 이해하게 만든다. 거기까지다. 철학 용어와 철학에 대해 훈련받지 않는 내가 단숨에 시와 철학의 세계를 연결시킬 수는 없다. 단순히 따라 읽기 그 이상은 아니다. 또 후반으로 갈수록 하이데거의 철학을 기반으로 시를 풀어내었기에 그 철학에 대한 이해 부족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이 책이 대중을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아직 시는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는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아주 가끔 시집이나 시를 읽는다. 만약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면 이 시 읽기를 통해 바로 잡힐 것이다. 학창시절처럼 시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눈으로 시를 보라는 기획 의도는 충분히 공감한다. 어느 대목까지는 함께 발을 맞춰나갔다. 아직은 거기까지다. 파편화된 시어들을 제대로 받아들여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하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시와 철학. 이 둘은 앞으로 새롭게 평생 공부해야할 동반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