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노이드 파크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1
블레이크 넬슨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오마주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주 오래전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읽지 않았던 고전을 읽겠다는 생각에 선택해서 읽은 소설이다. 한때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해 그 유명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나 <백치>, <악령>, <미성년> 등을 읽은 적 있다. 하지만 그때도 왠지 모르게 읽지 않은 소설이 <죄와 벌>이었다. 상당히 두툼한 분량이라 조금 질렸는지도 모른다. 다른 책이 더 두껍다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바로 그 유명한 세계문학을 기원으로 쓴 소설이 바로 이 책이다.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1월 3일부터 1월 8일까지 오리건 해변에서 썼다. 처음에는 이 날짜에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편지 속 시간과 편지 쓴 날짜가 맞지 않았다. 오타인가도 생각했지만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차이를 알게 된 것은 거의 마지막에 와서였다. 왜 이런 형식을 가졌는지, 이 편지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마지막 순간까지 단숨에 달려왔다. 물론 많지 않은 분량인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간결한 문장과 소년의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다.

소년이 파라노이드 파크에 간 것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위해서다. 사귀기 시작한 여자 친구 제니퍼의 유혹도 뿌리치고 친구 자레드와 그곳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자레드가 꼬시려고 했던 여대생의 호출로 약속을 깬다. 제니퍼를 만날까 생각도 하지만 보드의 유혹이 더 강하다. 혼자 공원에 있는데 한 부랑자가 다가온다. 스크래치다. 5분만 보드를 타게 해달고 한다. 빌려준다. 5분 후 돌아온다. 그의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러다 스크래치가 기차를 타자고 한다. 역으로 들어가는 기차를 올라타는 것이다. 새로운 재미와 세계가 펼쳐진다. 바로 그때 경비원이 그들을 보았다. 

단순히 쫓아낼 줄 알았던 경비원이 납이 든 것 같은 봉을 휘두른다.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그가 도망가는 것은 성공하지만 스크래치는 잡힌다. 스크래치가 당한 위협을 보고 그를 구하기 위해 보드를 휘두른다. 처음에는 약하게 그 다음은 아주 강하게. 운 나쁘게 경비원이 쓰러진 곳은 기차가 지나가는 곳이다. 몸이 뒤틀리고 끌려간다. 결국은 두 동강 난다. 죽었다. 이 상황에서 즉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다. 순간의 갈등 후 달아난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한 소년의 두려움과 심리적 갈등이 섬세하면서도 깊숙이 묘사된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소년도 엄청난 고민을 한다. 또 소냐처럼 메이시 맥러플린이 등장한다. 살인이 중심에 놓여있다. 이런 설정과 구성이 <죄와 벌>의 오마주임을 나타내준다. 하지만 다른 시대와 공간은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한 가족의 해체, 청소년의 성, 이 시대의 양심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부모의 이혼은 소년의 고뇌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를 보게 만든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문제만으로 벅차다. 가족 관계마저 인스턴트화 되어 가는 듯하다. 양심을 밖으로 표현하려는 순간 드러나는 거짓말은 이 시대의 현주소인지도 모른다.

죄와 벌. 살인을 저지른 죄로 소년은 벌은 받는다. 법에 의한 벌이 아니라 양심과 두려움에 의한 벌이다. 처음에는 살인에 대한 뉴스를 찾는다. 없다. 얼마 후 뉴스에 나왔을 때 경찰의 손길을 두려워한다. 도망가는 것도 생각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도움을 받으려고도 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너무나도 무겁다. 잡혀갈 줄 모른다는 두려움과 누군가를 죽였다는 양심은 같이 다닌다. 그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가족과 친구들은 단지 자신들의 판단으로 그를 재단할 뿐이다. 그가 바란 것은 진실을 말하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다. 물론 더 깊은 곳에는 잡히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평생 이 벌이 자신을 따라다닐 것임을 알고 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2007년 칸 영화제 60주년 특별기념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인 스케이트보드가 영화 속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이 스케이트보드를 작가는 글쓰기에 비유하고, 영화감독은 스케이트 보더들을 아웃사이더로 본다. 이 둘의 차이가 왠지 머릿속을 맴돈다. 그래서 작가는 편지 형식을 취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어떨까? 열린 결말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진실을 말할지 아니면 영원히 입을 다물지. 문장에 대한 극찬은 원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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