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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작은 새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고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드디어 오츠의 소설 한 편을 읽었다. 사실 집에 오츠의 소설이 몇 권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는다. 얼마 전 읽은 존 어빙의 경우와 유사한 이유다. 너무 유명한 작가의 경우 왠지 모르게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아마 너무 유명해 읽었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지루할 것이란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사놓은 유명작가 책이 너무 많아 선택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 보통은 가장 최근에 나온 책부터 손이 가거나 이벤트로 받아 읽은 경우다. 이번에는 후자다.
솔직히 적지 않은 분량이다. 많은 분량도 아니다. 800쪽이 넘는 소설도 즐겁게 읽은 것을 생각하면 550쪽 정도는 큰 무리가 아니다. 뭐 가끔은 200쪽 정도 소설도 아주 버거워했던 적도 있다. 분량은 흔히 하는 말로 숫자일 뿐이다. 이번 소설도 분량이 큰 문제는 아니다. 나의 집중력이 최고에 달했을 때는 휙휙 넘어갔고, 산만했을 때는 한 쪽도 힘들었다. 물론 단숨에 읽기는 살짝 부담이 되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작가가 서술하고 풀어내는 방식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에 나온 중요한 핵심 내용을 너무 쉽게 읽고 지나간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두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명은 살인용의자의 딸인 크리스타 딜이고, 다른 한 명은 피해자의 아들 애런 크럴러다. 전체 핵심적인 내용을 이끌고 나가는 인물은 크리스타다. 그녀의 아버지 에디 딜이 경찰들에 의해 죽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인상은 그녀의 아버지가 흉악범 혹은 살인자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감에 따라 이런 인상은 바뀐다. 그리고 아버지의 외도에 따라 산산조각난 가족의 풍경은 크리스타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거기에 살인용의자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타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동경은 멈추지 않는다.
애런은 어머니 조이의 시체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 그가 어머니의 나체 시신을 보고 했던 행동은 이성을 넘어 지극히 감상적이다. 크리스타에 아빠에게 빠졌듯이 그도 아버지 델로이를 사랑하고 옹호한다. 어머니가 죽던 날 아버지의 알리바이를 위증한 것과 알콜 중독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행동 등에서 드러난다. 그는 혼혈이다. 아버지가 세네카 인디언이다. 엄마는 당연히 백인이다. 미국의 인종 분류는 조금이라도 비백인의 피가 섞인 경우 백인이 아니다. 그가 혼혈인 것이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주어진 환경과 더불어 자신이 선택한 삶에 의해 뒤틀린다.
이 둘에게 과거는 빛나는 순간이 아니다. 물론 빛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조이의 죽음으로 산산조각난다. 그 이전부터 심한 균열이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완전히 깨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아버지와의 연결고리를 놓아버리지 못한다. 크리스타가 경험한 최악의 상황이나 애런의 그 이후 삶은 비참한 삶의 바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둘의 아버지는 강력한 용의자이기도 하다. 비록 이 두 사람 모두 아버지가 무죄라고 절대적으로 믿고 있지만. 이런 믿음과 상관없이 읽는 동안 누가 범인일까 의문에 잠긴다.
가상의 도시 뉴욕 스파타. 그 조그만 도시의 풍경은 삭막하다. 곳곳에 드러나는 마약과 폭력은 낯설고 황량하다. 크리스타가 경험한 하룻밤은 미래의 삶에 대한 목적을 잃은 청소년들이 환락을 통한 자기파괴의 연장선이다. 모범생인 크리스타에게는 버겁고 무서운 것이고, 애런에게는 일상이지만 더 깊은 곳으로 빠지고 싶지 않은 삶이다. 특히 마약이나 살인 등과 같은 중대 범죄에 대해 애런이 가지는 거부감은 그가 가진 마지막 한 자락의 이성을 말해준다. 그 때문에 약물과용으로 죽지도 않고, 감옥에 오랫동안 갇히지도 않는다.
두 사람을 연결하는 운명의 힘은 지독하게 강하다. 성인이 된 후 다시 만난 둘의 강렬한 열정과 탐닉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십 수 년 동안 그들 속에 잠자고 있던 욕망이 폭발할 때, 오랫동안 자신들이 믿든 진실을 확인했을 때 그 운명은 이제 자신들의 선택으로 바뀐다. 특히 마지막에 크리스타가 보여주는 선택은 그 운명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한다. 운명의 영향력 아래에서 아직은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책만 본다면 오츠의 소설에는 조금은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다른 소설을 몇 권 더 읽은 후 나의 작가 목록에 올릴지 판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