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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위반 -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묻는다
박용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평점 :
박용현 기자는 2008년 봄부터 2011년 봄까지 <한겨레21> 편집장으로 있었다. 이때 ‘만리재에서 ’란 칼럼에 글을 썼다. 이 글들을 모은 것이 이 책이다. 얼마 전 한겨레신문사 출신 손석춘 씨의 글 모음집 <새로운 바보를 기다리며>를 읽었었다. 우연인지 같은 신문사 출신의 칼럼이나 논설 등을 연속으로 읽고 있다. 왠지 한겨레와 나의 코드가 맞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히 기회가 닿아서 그런 것일까? 손석춘 씨는 예전부터 잘 알던 이름이다. 반면에 박용현 기자는 낯설다. 원래 신문 논설이나 칼럼을 잘 읽지 않는다.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이 한 권으로 책으로 박용현이란 이름을 꼭 기억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표지의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래은행 옆 화장실에 철수와 영희란 이름으로 된 비슷한 그림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살짝 저자의 약력을 본다. 그런데 별다른 내용이 없다. 특이하다면 간결한 것과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 정도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그의 학력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법에 대한 해석과 인용과 적용 등이 이전 어떤 칼럼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 하나를 만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그의 칼럼들을 열심히 읽었다.
모두 여섯 장으로 칼럼을 나눴다. 124편의 칼럼을 민주주의, 언론, 어린이, 인권, 정의 등을 주제로 분류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그의 전공 분야를 살린 글들이다. 일 년간 미국 로스쿨 유학 과정에서 경험한 것과 법철학을 인용해 풀어낸 해설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쯤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것들이다. 그 바탕에 깔린 민주주의와 법치를 생각할 때 더욱더. 그래서인지 단숨에 읽기는 조금 버겁다. 간결하고 좋은 내용으로 가득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나 자신의 문제들도.
그의 논설과 해설이 탁월한 법 지식을 통해 빛을 발하지만 현실에서 그 빛은 가두어져 있다. 대부분의 신문 독자들이 조,중,동,매만 읽고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아주 아주 가끔 이 신문들의 논설을 읽을 때면 교묘한 말장난을 보게 된다. 곡학아세라고 하나. 아마 보수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들도 나와 비슷한 표현을 할지 모르겠다. 이전에 독실한 한나라당 지지자 친구와 그 당시 유행하던 책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것을 느꼈고, <김광수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읽은 한나라당 지지 상사의 말에서 다시 한 번 더 깨달았다. 그들과 나의 사이에 너무나도 큰 틈이 벌어져 있구나 하고.
MB가 집권한 후의 칼럼이다 보니 보수언론이 눈을 감거나 무시하거나 왜곡한 내용에 대한 수많은 의문과 반박이 담겨 있다. 거기에 그의 생활과 함께 풀어져 나오는 글들은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버스나 지하철 경로석 문제나 통화예절 등. 그리고 제대로 그 의미를 몰랐거나 묻혔던 판결문 등이 그의 글로 되살아난다. 어느 글에서는 나와 주변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사회의 어둠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당장 움직이지는 못한다고 해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것들이다.
최근 나꼼수를 통해 또 다른 정치비판의 눈을 본다. 코믹하지만 신랄하고 나름 잘 정리된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잊고 있던 잊고자 했던 정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멋진 칼럼들에서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글들이 수없이 나오지만 나꼼수의 영향인지 눈길을 끄는 문장이 있다. “악마는 늘 디테일에 숨어 있으니까요.”(203쪽) 악마 기자 주기자가 연상된다. 물론 이 인용된 의미는 다르다. 하지만 조,중,동 이 지금까지 전체 맥락이 아닌 한 문장으로 전체를 왜곡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이때의 디테일은 주기자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그의 디테일은 배경과 사실에 대한 디테일이다. 한 문장이 이런 연상 작용을 불러왔다는 것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