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는 윤현승의 소설이다. 처음 만난 것이 <다크문>이었는데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그 당시 쏟아져 나온 수많은 판타지소설 중에서 특히 시선을 끈 몇 작품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작가를 새롭게 평가하게 된 것은 역시 대표작인 <하얀 늑대들>이다. 그 당시 이 작품은 온라인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었다. 전작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호평을 생각할 때 그냥 지나가기 쉽지 않았다. 당연히 찾아 읽었고 그해 본 장르문학 중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 후 윤현승이란 이름은 나에게 각인되었고 출간되면 늘 관심을 가지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사놓고 읽지 못하는 작품들이 점점 늘어난다. 어쩔 수 없는 책 욕심이다. 수많은 책 중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은 가볍고 빠르게 읽기 위해서다. 요즘처럼 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있는 시점에 딱 맞는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면 그 선택을 틀리지 않았다. 비오는 토요일 오후 커피숍에 앉아 단숨에 읽었다. 앞부분은 이 설정이 어딘가에서 본 듯하고, 한정된 공간과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약간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지루함은 사라지고 몰입하게 되었다. 신용불량자 서른다섯 살 종민의 이야기다. 그가 일하는 곳은 주유소다. 이런 그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종민이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이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할 제안을 한다. 그를 보낸 사람을 만나보라는 것이다. 그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간략하게 보여주면서 약간 고민을 한다. 말한 장소에 가니 그가 평소 바라던 아우디 R8가 있다. 이 차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차에 올라탄다. 그 남자는 안대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이 가는 곳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다. 몇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그 이외에 네 명이 먼저 와 있다.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임을 암시한다. 종민을 비롯한 다섯 명은 그곳에서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바로 운명을 거스르라는 것이다. 어떤 운명이냐고? 그것은 이 모임을 주재한 사람이 제시한 카드 속 문구가 지정하는 운명이다. 그리고 몇 가지 규칙을 말한다. 서로의 과거에 대해 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카드를 보려고 하지 말고, 매일 세 끼의 식사와 매일 밤 포커를 해야 한다 같은 것이다. 종민이 선택한 카드는 누군가를 살해할 운명이다. 만약 일주일 동안 그가 누구도 죽이지 않는다면 카드에 적힌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쉬운 운명이다. 하지만 이렇게 쉽다면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어떤 식으로 그가 이 모든 난관을 돌파할지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운명카드는 어떤 것인지도. 다섯 명 앞에 놓인 운명카드는 분명 하나의 미끼다. 이 게임을 마지막까지 탈락하지 않고 운명을 거스른다면 최소 20억 원을 가질 수 있다. 중간에 탈락자가 있다면 총 100억에서 남은 사람 수로 나눈 금액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최후의 한 사람이 남는다면 100억을 가질 수 있다. 종민이 가진 운명카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니 마지막까지 규칙을 지키면서 누군가를 죽이지만 않는다면 최소 20억을 가질 수 있다. 이 돈이면 그의 모든 빚을 갚고도 남는다. 너무 거스르기 쉬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바로 그 때문에 긴장감이 생긴다. 다른 누군가 반대되는 운명카드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온한 하루의 일상이 먼저 펼쳐진다. 사건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밤에 펼쳐지는 포커판이다. 포커판은 첫날 이 장소에 온 모든 사람이 수고비 대신 받은 칩으로 이루어진다. 이 칩을 현금으로 바꿔 집으로 간다면 그냥 수천만 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수십억의 유혹은 너무나도 강하다. 단순한 시간때우기 같았던 포커판에 변수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은 종민이 그냥 모두 잃기 위해 던진 패 때문에 생긴다.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운명은 굴러가기 시작했고, 그의 숨겨진 과거와 연결되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포커판을 제외하고 이어져오던 평화롭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작가는 이 지점을 계속 찌르고 파고든다. 흔히 우리는 협력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 속에서도 서로 협력하면 충분한 금액을 서로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서로의 운명카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들의 숨겨진 욕망이 자라면서 개인적으로 변해간다. 가장 먼저 탈락한 사람의 운명카드 내용이 드러날 때 왜 그렇게 악착같았는지 알게 되지만 뒤에 나오는 설명처럼 웃자란 욕망이 평온한 길을 용납하지 않는다. 거기에 이어지는 죽음은 긴장을 고조시키고 마지막 날까지 규칙을 지키며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누가 과연 살인자인지도 의문이 생기고, 변함없는 환경은 공포심을 유발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일본 만화 <도박묵시로 카이지>의 설정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 결말은 예상을 뒤엎었고, 몇 가지 추론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