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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과 기도
시자키 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는 부분에 먼저 혹했다. 예전에 이우혁이 <퇴마록 - 세계편> 에서 이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적이 있다. 물론 판타지 소설에서 주목한 것은 세계 각지의 전설과 괴담이다. 각 나라의 풍경과 더불어 풀어낸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그곳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그것과 좀 다르다. 잡지사 기자 사이키를 등장시켜 낯선 풍경과 문화를 먼저 보여주고, 그 속에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미묘한 서술 트릭을 사용하여 반전을 그려내는데 마지막 장면들은 긴 여운을 남긴다.
어떻게 보면 미스터리라고 할 수 없는 대목으로 가득한 단편들이다. 하지만 꼼꼼하게 그 상황들에 다가가면 사이키의 추리가 빚어내는 결과가 탐정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그가 경찰이나 다른 조력자의 도움 없이 홀로 모든 사건을 마주하고 풀어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물론 이것은 그가 여행자로 방문한 장소가 과학수사를 진행할 여건이 전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사막 한 가운데, 밀림 깊은 곳 등이라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것은 곧 한정된 사람들이 추리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외생변수가 전혀 없다는 전제 조건 아래에서 말이다.
<사막을 달리는 뱃길>은 사하라 오지에서 운반되는 암염을 운반하는 상인들을 다룬다. 이들은 사막을 달리는 배로 불리는 낙타를 타고 움직인다. 그런데 이 사막이라는 곳이 시시각각 바뀌는 지형 때문에 정해진 길이 없다. 상인들의 대장만이 이 길을 제대로 알고 있지 나머지 상인들은 몇 차례 온 것으로 이 길을 알 정도는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 발생하는 죽음들은 의문을 불러온다. 이 연속된 죽음 속에서 진실을 꿰뚫어보는 한 명이 있는데 그가 바로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사이키다. 인상적인 대목은 상인들이 암염 한 장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면서 그 가격을 말하는 순간이다. 가격은 5달러다. 그가 얼마나 풍족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 말하는 순간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느꼈다. 이 단편은 제5회 미스터리즈! 신인상 수상작이다.
스페인으로 달려간 <하얀 거인>은 사실 조금은 억지스러운 대목이 있다. 사쿠라의 여자 친구가 사라진 트릭이 바로 그 부분이다. 전설과 교묘하게 엮어놓았는데 트릭이 밝혀지는 순간 아! 하고 감탄하기보다 응? 이란 의문이 더 들었다. 여기도 미묘한 서술트릭이 들어있는데 앞부분을 세밀하게 읽어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풍차 전설에 대한 해설은 관광이나 필요에 의해 왜곡되고 날조되는 역사에 대한 일침이다. 지금도 많은 곳에서 이런 날조와 왜곡이 이어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정확하게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다.
<얼어붙은 루시>는 낯선 러시아 정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 수녀원의 리자베타 님으로 불리는 시신을 시성하러 가는 일행에서 시작한다. 이 시신은 성녀로 불리는데 썩지 않고 생전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이것을 정교 신부가 확인하러 간다. 신부와 사이키의 대화는 정교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대목이 많이 나오는데 낯설지만 유익하다. 그리고 앞의 이야기들과 달리 두 사람의 시점을 교차하면서 풀어낸다. 확인되지 않는 시체를 두고 벌어지는 추리와 어스스한 반전은 앞의 작품들과 다른 여운을 남긴다.
아마존 오지 소수민족이 사는 곳을 방문한 이야기가 <외침>이다. 데무니 족을 방문하기 위해 영국 의사 애슐리와 함께 간다. 힘겹게 방문한 그곳은 알 수 없는 병으로 부족민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애슐리는 증상을 보고 에볼라 바이러스를 의심한다. 무시무시한 사망률을 보유하고 있고 영화 속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 바이러스 말이다. 당연히 사이키도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다. 도움 요청이자 피난을 위해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다리가 쏟아진 비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본 죽음은 살인의 흔적이다. 그냥 둬도 죽을 사람들인데 왜 이런 살인이 벌어질까? 관념은 이유를 찾아 움직이고 문화의 충돌은 새로운 곳으로 원인을 찾아간다.
<기도>도 역시 조그만 서술트릭을 사용한다. 화자와 모리노의 정체가 그것이다. 중간중간 모리노가 말하는 이야기는 앞에 나온 단편들이다. 모리노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화자도 마찬가지다. 섬 속에 있는 동굴과 그 벽에 있는 그림들 이야기는 하나의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인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누구에게는 감옥이고, 누구에게는 그곳이 기도와 염원의 장소다. 중간에 살짝 끼어든 영상과 이미지는 이야기 구조와 엮이면서 새롭고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다. 화자의 노트는 영화 <메멘토>의 흔적이 살짝 보인다. 과연 기억을 찾아낼까? 의문이 생기는 마지막 장면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