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 속에 나오는 절해고도 중 대부분이 요즘은 너무 쉽게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다. 그렇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완전히 다르다. 쾌속선으로도 몇 시간 걸리는 곳이거나 자기가 살 던 곳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물론 강화도 옆의 교동도처럼 멀지 않은 곳도 있다. 그래도 그곳을 가지 위해서는 배를 이용해야 한다. 심리적인 거리감은 현재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거기에 위리안치라니 얼마나 가혹한 처벌인가!

위리안치는 머무는 집의 지붕 높이까지 가시나무를 둘러쳐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킨 형벌이다. 섬이라는 공간이 유배지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와 격리된 곳이다. 그런데 가시나무로 둘러쳐 외부와 완전히 동떨어지게 했다는 것은 엄청난 유배다. 유배를 간다는 것이 중앙 정부의 권력과 가까웠다는 의미인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심리적인 박탈감은 더 대단했을 것이다. 유배지 특성 상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책 속 몇몇은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낸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몇몇은 십 수 년을 그곳에서 보내며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두 저자는 유배된 섬이 절망의 땅이었고, 무기징역형이었기 때문에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모른다는 사실에 무게를 실었다. 이 사실은 그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거나 학문의 성취를 이루거나 예술혼을 더 높인 인물이 나온 것은 대단한 일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졍약전 같은 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유배되어서 한 번 가고 관리로 한 번 다시 그곳에 간 조정철의 사연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조정철의 위리안치는 그 정도가 심해 다른 인물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절해고도는 곧 멋진 풍경이 있다는 말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아닌 곳도 있다. 하지만 저자들이 다녀와서 보여준 멋진 사진들은 지금 봐도 절경이다. 개발의 손길에 많은 부분 해손된 곳이 있음을 감안하면 그 때는 더욱 멋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절 유배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면 다를 것이다. 마음이 막혀 절경이 눈에 와 닿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섬사람들과 깊은 유대를 맺고 있다가도 유배형이 풀리면 금방 떠났다는 사실은 역시 집보다 못함을 말해준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유적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문헌에 기대어 그곳을 찾아가는데 약간 아쉬움이 있다.

두 저자가 이 먼 곳을 찾아가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유배지에 그들이 남긴 기록들이 그 섬을 알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절망의 땅과 그 반대의 기록들이 그들을 부른 것이다. 이 기록들은 다시 이 글을 통해 독자의 가슴 한 곳으로 파고든다. 단순히 멋진 풍경으로 기억하던 곳이 ‘아! 예전에 이곳에 유배되었지만 결코 그 의지가 꺽이지 않은 인물이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이것은 또 유배지가 절망의 땅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임을 알려준다. 그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은 인물이 나온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모두 열네 곳과 열네 명의 인물의 다룬다. 낯선 인물들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오는 것은 그들이 역사서에 자주 혹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 작품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또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서 이런 유배를 견뎌낸 인물이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알려준다. 그 시절을 힘겹게 견뎌낸 것이 어느 정도 큰 밑거름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책 곳곳에 이전에 알고 있던 사실 몇몇을 새롭게 보게 된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익현의 최후와 명사십리의 의미다. 더불어 이제는 멋진 관광지 혹은 풍경을 가진 곳이 된 절해고도로 발길을 옮기고 싶다. 뭐 그곳에서 선조의 흔적은 뒤로 밀리고 절경에 더 눈길을 더 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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