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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평점 :
얌전한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백가흠의 소설을 처음 읽는다. 읽기 전에 이 작가에 대한 평은 그리 온화한 것이 아니었다. 엽기라는 단어가 보였는데 이번에는 조금 변했다는 평이 나온다. 이전 작품이 얼마나 과했는지 모르지만 백민석의 소설이나 다른 미스터리 스릴러에 단련된 나에게 과연 이것이 통용될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 예상외로 잔잔하다. 누군가는 하나씩 해부하면서 힌트는 도련님이라고 말한다. 자전적 내용이 담긴 글에서 창의성이 바닥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 중 하나가 바로 과거의 답습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힘겹게 찾아낸 것 같다. 그렇지만 처음 접한 이 작가의 과격하고 엽기적인 전작에 대한 호기심을 누그러트릴 정도는 아니다.
단편소설 여덟 편이다. 요즘 한국 단편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 것을 떠올리면서 책을 꺼내 들었다. 첫 소설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를 읽었다. 제목부터 상당히 인상적이다. 소문이 단련된다는 것이 어떤 말일까? 이 소설은 사라진 두 여자를 둘러싼 소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탈북여성 림혜숙과 의사 남편을 둔 장 약사라는 위치는 사실 극과 극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말도 없이 사라졌다. 림혜숙을 그리워하고 찾는 김 씨나 며느리가 사라진 것을 태연한 척 넘기려는 황 약사의 대응 방법도 다르다. 이런 와중에 소문이 마을 가득 생겼다 사라지는 소문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는다. 순간 보이는 몇 장면에서 작가에 대한 평을 떠올리게 한다. 좋은 출발이다.
<그런, 근원>은 한 남자의 삶을 축약해서 보여준다. 불행했던 과거사와 현재를 다루는데 이 이야기들은 그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찾아가는 도중에 벌어진 회상이다. 그의 가족사는 현대사에 가끔 나오는 그것과 비슷하다. 아버지의 실종, 어머니의 가출,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탐욕. 여기에 동생은 깡패 짓에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는 생존을 위해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다 때밀이하다 발탁된 기획사 매니저 직업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이 새로운 삶이 그를 세련된 듯한 인물로 바꾸지만 삶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의 노인은 한때 나의 모습을 떠올려준다. 책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 시절의 나 말이다. 물론 소설 속 노인은 나보다 훨씬 심하다. 미래에는 이런 삶을 어느 부분 부러워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집과 서재에 매몰된 삶을 사는 이 노인 조금 이상하다. 이웃과의 대화나 상황이 현실을 넘어섰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신 안으로 파고들고 매몰된 삶과 죽었던 작가가 쓴 글씨가 사라져버리는 장면이 겹쳐진다.
표제작 <힌트는 도련님>은 자전적인 글이다. 읽으면서 어렴풋이 느꼈는데 다른 이들의 평을 보니 확실하다. 과거와의 이별, 새로운 창작을 위한 고통을 다루는데 곳곳에 유머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 유머가 폭소를 터트릴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허탈하거나 자조적인 웃음에 더 어울린다. 그렇지만 아직 읽지 않는 작가의 전작들을 생각하면서 이번 작품집에도 그런 강한 소설 한 편이 실려 있었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리고 대형서점에 자신의 책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소설가의 심정은 어떨지 궁금하다.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는 키 작은 한 남자의 하루를 다룬다. 그는 정수기를 판다. 그의 키는 150센티미터다. 이 작은 키 때문에 정수기를 잘 팔지만 삶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 40이 넘었지만 비교적 동안 때문에 학생으로 오해를 받고, 만원 지하철이나 버스는 그가 움직일 공간을 제약한다. 정수기를 팔기 위해 간 동물원은 그의 과거를 떠올려주고, 현실은 다시 그를 압박한다. 딸아이가 원하는 생일 선물을 산 그가 고민하는 장면에서 가슴 한 곳이 짠해진다.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통>은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했던 삶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느꼈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또 그들을 이용해 권력과 금력을 약취한 자들이 누군지 보여준다. 피상적이었던 그 고통이 현실로 다가오고 어떻게 그들이 고엽제 피해자가 되었는지 볼 때 나의 참을성 없었던 과거가 겹쳐졌다. 현실의 고통을 다스리기 위해 더 큰 고통을 가하는 장면이나 약으로 환각의 세계를 빠져든 그를 볼 때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쁘이거나 쯔이거나>는 두 문제를 하나로 엮어내었다. 하나는 농촌 노총각 문제고, 다른 하나는 당연히 베트남 여성의 결혼 문제다. 결혼이라는 관습과 한국이라는 환상이 만들어낸 이 결합은 결국 파국으로 이어진다. 환상이 깨어진 자리를 채워줘야 할 남편은 마마보이에 본전 생각과 성욕만 가득하다. 오십이나 된 아들이 어린 아내와는 섹스만 하고 잠은 엄마 옆에서 잔다. 먼 타국으로 온 쯔이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에 오면 늘 볼 것 같았던 동방신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텔레비전에서 본 서울의 화려함은 어디에도 없다. 여기에 마흔여덟의 시동생까지. 환상이 사라지고 비루하고 처참한 현실만 자리한 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파국은 너무나도 뻔하다. 더불어 마지막에 두 형제가 공모하는 웃음은 이 소설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이다.
는 이 단편집 중에서 가장 발표가 빠르다. 작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라 과연 어디까지 자전적인지 알기 쉽지 않다. P가 말하는 과거사 중 한 장면은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이나 언론을 통해 자주 보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 속에 참가한 사람의 반응은 낯설다. 특히 어떤 정확한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참여한 사람이 아닌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예전에 소설가 친구가 있으면 어떤 이야기하기가 겁이 난다고 한 글이 생각난다. 다음에 소설로 그 이야기가 활자화되기 때문이란다. 과연 이 소설 속에는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