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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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말 오랜만에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을 읽었다. 단 하나의 장편으로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그다. 바로 그 유명한 <은하영웅전설>이다. 이 소설이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등장인물과 장대한 전쟁 이야기에 완전히 빠졌었다. 지금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가끔 들었는데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여전히 그 재미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이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를 보면서 역시!를 외쳤던 적이 있고, 이 소설에서 <은영전>의 향기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입부에서 지구의 북극점이 태평양 동북부로 바뀌는 대전도를 설명한다. 이 대목은 얼마 전 읽은 <문 로스트>를 연상시켰다. 물론 <문 로스트>와 이 소설이 다루는 내용도 대륙의 변화도 다르다. 하지만 대륙의 날씨 변화라는 점은 이 두 일본작가가 왜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졌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혹시 지진 등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 특유의 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니면 이 원작들이 나올 당시 이런 종류의 대재앙을 다루는 내용이 하나의 유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 공부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전도 전 인류는 달에 월면도시를 만들고 거주했다. 대전도는 3년에 걸쳐 벌어진 대재앙이다. 이 때문에 100억 명의 인류가 죽었다. 대전도 후 월면도시의 사람들은 신의 강림처럼 내려와 완벽한 도시 및 자원 개발 계획에 따라 일곱 도시를 건설한다. 이 일곱 도시는 당연히 경쟁을 하는데 작가는 하나의 전제 조건을 단다. 월면도시 사람들이 지구 표면의 사람들이 지상 500미터 이상 날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 이상을 날아오르면 올림포스 시스템에 의해 파괴된다. 이 장치로 달은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하지만 월면도시가 달을 강타한 운석의 바이러스에 의해 파괴되면서 지배자는 없지만 시스템에 의해 제약되는 지구를 만들게 된다. 이 소설은 이런 환경 속에 벌어진 일곱 도시 이야기다.

모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각각 길지 않은 분량인데 전쟁과 영웅과 정치를 다룬다는 부분에서 많은 부분 <은하영웅전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본 구성은 간단하다. 정치 문제가 전쟁으로 발전하고 이 전쟁에서 한 명의 영웅이 탄생한다. 재미난 부분은 군인을 철저하게 정치에 부속되게 그려내었다는 것이다. <은영전>에서 라인하르트를 통해 위대한 독재자가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보여주는 반면 양 웬리를 통해 민주주의의 혼란 속에 감쳐진 위대한 힘을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의 모습이다. 물론 이 소설 속 사령관들은 정치인들을 위해 전쟁을 하지만 가끔 태업을 하면서 조율을 한다. 그리고 독재자로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도망가게 만들어 정치에 대한 작가의 혐오를 느끼게 만든다. 이 부분은 <창룡전>에서 신랄하게 일본 정치를 비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앞 세 단편이 네 명의 개성 강한 사령관을 등장시켜 전쟁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그 이후 두 편은 이들의 미묘한 견제와 협력 속에 펼쳐진다. 군인 외에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는데 류 웨이다. 첫 이야기 아퀼로니아 전쟁을 다룬 <북극해 전선>에서 날카로운 통찰력과 정확한 판단력과 인선으로 전쟁을 승리하게 만들고 다른 도시로 이주한 인물이다. 이 이야기 이후에도 그의 영향력과 그림자는 전편에 드리워져 있는데 낭중지추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인물이다. 그를 통해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가 충분히 활약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가진다.

이 소설 속 전쟁 영웅들은 공격이 아닌 방어로 명성을 얻었다. 예외라면 케네스 길포드 정도다. 첫 이야기에서 그가 이끈 대승도 상대 도시 최강의 인물 AAA와의 대결이 아닌 데 이런 직접적인 대결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의외의 전개라면 각 도시 최고의 군인들이 연합으로 한 도시를 공격하는 것이다. 독재자를 몰아내겠다는 목표에서 벌어진 <페루 해협 공방전>은 최강의 군인들이라도 하나의 지휘계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면 그 위력이 반감됨을 보여준다. 하나의 명령 아래 긴밀한 협조와 치밀한 계획과 자기희생이 따랐다면 쉽게 승리했을 이 전쟁을 말이다. 그리고 재미난 부분은 이들이 정치인들의 욕심을 견제하고 부하들의 목숨을 더 챙긴다는 것이다. 가끔 전공에 대한 욕망 때문에 무모한 공격을 감행하는 장군들을 생각하면 상당히 예외적인 인물들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는 변함없다.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고 고개를 끄덕이는 대화 두 개만 말하겠다. “어린애는 스스로 굶어서 장난감을 사지만, 군인은 타인을 굶겨 병기를 사게 한다. 어린애는 마르고 군수 기업은 살찌는 거야.”(162쪽)와 류 웨이가 ‘전쟁 개시 결의에 찬성한 정치가가 최초로 전선에 나올 의무를 진다’는 법률안을 내고 부결된 것을 아스발이 “그야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면, 전쟁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으니까요.(168쪽)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한국처럼 고위층의 병역비리가 특히 많은 나라에서 류 웨이의 법률안은 더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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