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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밖으로 달리다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6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처음 제목을 보고 sf소설인 줄 알았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비슷한 제목과 시간 밖이란 단어 때문이다. 표지를 봐도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선입견이 작용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책을 펼쳐들고 앞부분을 읽으면서 19세기 말 풍경과 뭔가 어색한 장면들이 나오면서 이제 본격적인 sf 이야기로 넘어가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클리프턴은 19세기 말에 존재했을 것 같은 마을 하나를 그대로 현실에서 재현한 곳일 뿐이다. 그들이 실제 살고 있는 시대는 1996년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클리프턴은 실제 존재하지만 현실의 시간 밖에 존재하는 가상의 마을이다. 제목에서 시간 밖으로 달린다는 것은 주인공 제시가 살고 있는 마을의 시간이 그녀가 그 마을 벗어나는 순간 실제 현실의 시간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녀가 지금까지 믿고 있던 시간과 공간 밖으로 나가면서 그 둘의 차이가 급속하게 벌어진다는 의미다. 그녀를 옆에서 본다면 당연히 그녀가 현실 속에서 움직이지만 그녀의 심리와 문화 상태 등을 생각하면 이것은 먼 미래의 세계다. 이 제목의 의미를 깨닫고 참 제목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제시가 평화로운 클리프턴을 떠난 데는 이유가 있다. 그 마을에 창궐하는 전염병 디프테리아를 치료할 약을 찾기 위해서다. 단순히 이 내용만 보면 성배를 찾아 떠나는 원탁의 기사 느낌이 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병 때문에 제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진실을 알게 되고 시간 밖으로 나가게 된다. 결코 그녀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계로 말이다. 그리고 이 모험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평범한 일이지만 150년 이상의 시공을 초월한 그녀에게는 낯설고 신기하고 두려울 뿐이다. 작가는 이 낯설고 두려운 세계와의 만남을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클리프턴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과거 마을이다. 이 마을을 만든 백만장자의 노력 외에도 이 마을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른들이 현재에서 과거로 옮겨왔다면 아이들은 과거가 현재인 줄 알고 살았다. 당연히 마을의 생활습관이나 문화는 과거를 재현하는 쪽으로 흘러갔고, 현대에서 사용되는 단어나 도구는 금기시 되었다. 이 마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빌리지>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클리프턴의 풍경을 떠올리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혹시 그 영화가 이 소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의문이 생길 정도다. 뭐 다른 소설인가에서 이런 비슷한 설정의 마을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어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디프테리아 약품을 구하고, 언론에 클리프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시간 밖으로 나간 제시의 모험 이야기다. 시간과 문화 충격을 경험하면서 그녀의 성장을 돕고, 우리의 현재를 낯선 시각에서 쳐다보게 된다. 더불어 제시의 모험을 통해 쫓기는 여자 아이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같이 경험하게 된다. 낯선 시각에서 본 낯익은 풍경은 신선하고, 클리프턴의 풍경은 혹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들여다보는 다른 존재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게 만든다. 영화 <맨 인 블랙 2>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다.
결코 많지 않은 분량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재미도 있지만 수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지닌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제시가 클리프턴을 달아나는 과정과 달아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미스터리 요소가 강하게 담겨 있다. 왜?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고, 그 비밀을 풀기 위해 13살 여자 아이는 정말 최선을 다한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 와서 그 긴장감이 너무 풀려서 아쉬움이 있지만 멋지다. 가끔 종말론을 다룬 소설처럼 현재의 최첨단 삶을 갑자기 모두 잃고 그 답답한 과거로 퇴행한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과연 우리는 제시처럼 빠르게 현실에 적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