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읽은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최초 전작 장편소설이었는데 이 작품 <낯익은 세상>도 생애 최초 전작 장편소설이다. 두 거장이 처음으로 전작 장편을 썼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비슷한 제목으로 책을 내놓았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 ‘낯익은’이란 단어는 똑같지만 두 거장이 현재 바라다보는 곳은 다르다. 최인호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자기 내면으로 파고들어갔다면 황석영은 낯익은 세상의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 이 두 노장의 시도를 정확하게 가름하기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반갑고 즐거운 일이란 것이다. 낯익은 세상에서 다루어지는 시공간은 1980년대 초 난지도다. 시간은 딱부리 최정호의 아버지가 삼청교육대로 잡혀간 사실로, 장소는 쓰레기 매립지라는 것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작가가 이 시공간을 배경으로 쓰게 된 데는 작가의 말에서 “모든 것을 쓸어버린 뒤의 폐허에 남아 있는 연민을 위한 것”이란 것으로 알 수 있다. 노년 문학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치열한 전위를 멀리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몇 년 전 갑자기 이명박을 칭찬하고 함께 했던 그가 떠오른 것은 왜 일까? 그 옛날 가장 앞에서 낮은 곳에서 세상을 함께 보던 그다. 이번 소설도 그런 곳에서 시작한다. 꽃섬이란 예쁜 이름 뒤에는 쓰레기 매립지라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장소가 숨겨져 있다. 이제는 난지도라는 이름보다 하늘정원이니 발전소 등으로 바뀌어 예전의 더러운 모습이 사라졌지만 희미한 기억 속에 그곳이 아직도 뚜렷하게 생각난다. 그리고 얼마 전 동남아나 인도나 중남미 국가의 쓰레기 산을 본 것이 같이 떠올랐다. 그때 나의 반응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떻게 저런 데서 살 수 있지’ 하고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빼빼 마른 가족들의 처참한 생활을 보고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꼈는데 이 책을 읽자마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2~30년 전 서울 난지도에서 그와 별다른 차이 없는 삶을 산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빠르게 발전하고 변하는 한국 현실에서 아름답지 못한 과거가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지워져 있었다. 이것을 보면 그 옛날 민주투사로 불렸던 사람들의 변심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생각도 동조할 생각도 없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가계를 책임지고 있던 가장이 사라지면 남은 가족들의 삶은 힘들어진다. 먹고 살기 위해 은밀한 유혹이 담긴 것을 알지만 이사를 한다. 그래서 딱부리와 엄마가 가게 된 곳이 꽃섬이다. 이 모자를 데리고 간 인물의 얼굴에 검은 반점이 크게 있는데 이 때문에 딱부리는 그를 아수라라고 부른다. 마징가Z에 나오는 악당이다. 그는 꽃섬 매립지에서 쓰레기차가 들어오면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차지할 권리를 가진 반장이다. 지금이야 아파트 등에서 분리수거를 잘 해서 쉽게 실어갈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분리수거가 없던 때다. 그러니 잘만 건지면 먹고 재활용할 것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어디서 오는 쓰레기냐에 따라 권리금이나 하루벌이가 달라진다. 당연히 최고는 미군부대고, 부자 동네일수록 높다. 이런 환경 속에서 딱부리는 아수라반장의 아들 땜통과 친해진다. 약간 어눌해 보이지만 그가 데리고 다니면서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딱부리는 한 수 접어준다. 낯선 환경에서 땜통이 보여준 풍경과 만남이 아이의 상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특이 빼빼엄마와의 만남은 더욱 그렇다. 빼빼엄마는 이 소설 다른 사람들처럼 본명으로 불리지 않는다. 늙은 치와와 빼빼를 키우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데 신기가 살짝 있다. 어떻게 보면 미친 것이지만 그녀의 몸은 귀신이 잠시 들어왔다가 머물다 간다. 여기에 예전에 꽃섬에 살았던 귀신 가족을 등장시켜 쓰레기 섬 그 이전의 아름다웠던 꽃섬을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파괴하고 잊고 있던 세계와 현실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지금은 점점 사라지고 파괴되고 있지만. 80년대 도시 하층민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말한다. 빼빼엄마가 꽃섬에 큰 불이 난 후 못쓰는 물건들을 소중하게 감춰두고 쓰레기장 물건들은 버리면서 하는 말이 강하게 와 닿는다. “저것들은 사람들이 정을 준 게 아니잖아!”(225쪽) 아무리 좋고 깨끗한 것이라도 사람들의 정이 담겨 있지 않은 물건은 그냥 쓰레기일 뿐이다. 이것은 그 쓰임새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과도 연결할 수 있는데 그것은 너무 나간 것이고, 점점 각박해지고 매정해지는 소비적인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히 낯익은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각자의 욕망은 점점 더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