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잠 재의 꿈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0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미로 시리즈 번외편이다. 대부분 번외편처럼 이 소설도 시리즈 중에 등장하는 사람 중 한 명이 주인공이다. 놀랍게도 그 주인공이 무라젠이다. 미로 시리즈에서 어떻게 보면 미로보다 더한 존재감을 보여준 그 말이다. 무라젠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흥미로운데 이 이야기엔 미로도 깜짝 출연한다. 비록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도지만. 그리고 현재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서 무라젠이 왜, 어떻게 야쿠자 조사 탐정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품어져 나오는 무라젠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이 번외편을 시리즈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로.

때는 도쿄올림픽을 1년 앞둔 1963년 9월. 그 당시 무라젠은 일본에서 지금은 사라진 직업 '특종꾼' 시절이었다. 사실 이 특종꾼과 특종을 터트리는 르포라이터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주간지에서 일하면서 기사를 썼다. 9월 5일 저녁 8시 좋아하지 않던 지하철을 타고 가던 무라젠 근처에서 폭탄이 터진다. 일본 범죄사의 대표적 미해결 사건인 소카 지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특종꾼답게 금방 소카 지로 사건을 떠올리지만 현장에 도착한 형사 이치카와에 의해 현장에서 쫓겨난다. 이 사건을 <주간 담론> 데스크에 보고를 하는데 손님과 상담중이라고 한다. 사진반을 보내라고 요청한 후 잡지사로 돌아간다. 낯선 자동차가 잡지사 앞에 서있다. 야쿠자 같은 남자들이 데스크의 안내를 받고 나온다. 그리고 무라젠을 특종꾼으로 이끈 도야마 군단의 현재와 미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 길지 않는 상황과 장면 속에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의 핵심을 작가는 담아내었다. 비록 읽으면서 깨닫지 못하지만.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된다. 하나는 소카 지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조카를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데리고 온 다키 살인 사건이다. 큰 흐름은 소카 지로 사건이 차지하고 그 사이사이의 공간을 메우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다키의 사건이다. 특히 다키의 사건은 무라젠이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다. 이 때문에 그가 야쿠자 조직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쏠리는 의심을 풀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이 과정에서 무라젠의 매력과 능력을 마음껏 품어낸다. 야쿠자 데이의 “당신은 행동력과 두뇌 모두 완벽하게 균형이 잡혔어요.”(332쪽)란 말은 그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다. 

무라젠이 시리즈 첫 권에서 미로에게 “중요한 건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성과 왜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상상력이야.”라고 말했는데 이 한 편으로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의 이면을 상상력으로 밝혀내는 그의 능력은 낱낱이 조각난 단서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복원할 정도로 뛰어나다. 거기에 그는 한때 권투를 했고 남자로서의 어느 정도 무력도 갖춰 미로의 유일한 약점을 지울 수 있다. 그리고 미로가 가진 행동력과 두뇌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알려준다. 가끔 미로가 의뢰한 사건 조사 중 벽에 부딪혔을 때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경험과 능력 때문이다.

미스터리 작가에게 미해결 사건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런 점에서 소카 지로 사건에 대한 작가의 해답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 시대의 자료를 가지고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정리하고, 분석하면서 풀어내는 가정은 시간이 지났기에 가능한 추리다. 이해 당사자들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사라졌기에 더 분명하게 그 사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란 공간이기에 이런 대담한 추리가 용납되고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에 매력적인 주인공 한 명을 넣는다면 금상첨화인 것은 당연하다. 

단순히 미해결 소카 지로 사건과 살인 사건만 다루었다면 흥미로웠을지 모르지만 풍성함이나 인간적인 매력은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 시대의 풍경을 정확하게 그려내면서 무라젠 주변 사람들을 같이 보여주었기에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특히 시대의 풍경은 현재와 상당히 다른데 이것을 생각하면서 읽게 되면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 친구 고토와 짝사랑 사나에와의 관계는 청년 무라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미로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즐겁지만 무라젠의 새로운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 이제 미로 시리즈 마지막 한 권만 남았는데 이때 만날 무라젠은 분명히 기존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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