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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종의 요리책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김수진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넘어서는 악마적 매혹! 이라고. 글쎄. 이 말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워낙 <향수>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슷한 점을 꼽는다면 더 강렬한 장면으로 채워진 요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부분은 분명히 <향수>를 넘어섰다. 정말 무시무시하고 잔혹하다. 하지만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화려한 요리법과 감정이입을 차단한 묘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나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향수>와 비교한 책에 대해 좋은 평을 하지 않았다. <향수>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주제가 다른데 억지로 붙인 듯한 광고 문구 때문에 거부반응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책도 역시 앞부분에 그런 거부반응이 있었다. 제목과 첫 장면에서 풍기는 강렬함을 감안한다고 해도 그랬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향수>와 완전히 다른 전개방식이었다. 뭐 한 인간의 집착과 삶을 다룬다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오히려 이 자극적인 제목 뒤에 감춰진 아르헨티나 현대사가 더 눈길을 끈다.
플레이보이의 평에 ‘한 가문의 잔혹사’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렇다. 이 소설은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요리사가 되고, 레시피를 만들고, 갑자기 죽는지 보여준다. 한 세대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다루는데 이 집안의 역사 속에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같이 녹였다. 동시에 이탈리아의 이민사도 같이. 사실 아르헨티나 역사에 대한 정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이 소설이 풀어내는 중요한 장치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거의 궁극의 요리비법서처럼 다루어지는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과 음식들이 침을 삼키면서 빠져들게 만든다.
세사르 롬브로소가 처음으로 인육 맛을 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바로 이 아기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고 이 가족의 과거사가 연대별로 펼쳐진다. 이 과거사가 거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읽으면서 언제 세사르가 보여줄 끔찍한 요리가 나올지 기대(?)하게 된다. 이런 기다림의 시간 속에 펼쳐지는 한 가문의 역사는 처음 예상한 것과 너무 달라 쉽게 빠져들지 못한 부분도 많다. 하나의 긴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고 빠르게 변하면서 흐름을 끊기 때문이다. 아마 책에 대한 접근방법이 잘못된 탓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식인주의에 관심을 둔 것이다. 뭐 첫 장면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음식에 대한 나의 식탐을 생각하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수많은 요리들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다양하고 화려한 요리들은 침을 계속 삼키게 만들고 언제 먹어보지 하는 상상을 끊임없이 하게 한다. 아주 가끔은 이런 화려한 묘사와 달리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도 있을 것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도 끼어든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 상상은 금방 제압당하고 침을 흘린다. 처음 만났던 인육에 대한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 그리고는 예전에 보았던 영화나 소설 속 인육 요리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식인주의의 인문학적 정보도 동시에 지나갔다. 이런 정보들은 너무나도 간결하고 무덤덤한 묘사와 서술 속에 사라졌다. 앞으로 또 어떤 살인과 요리가 만들어질까 호기심을 불러오면서.
옮긴이의 글에서 “인류의 역사가 결국 ‘식인주의’의 반복에 불과하다”(277쪽)를 읽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음식으로서의 식인이 아닌 역사 속 장면들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얼마나 잔혹한 일들이 많았는지, 상상 그 이상의 일들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 또 소설 속 아르헨티나 근현대사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게 되면 조금 생각이 바뀔 것이다. 아니면 아우슈비츠나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그 부산물들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작가는 “당시 아르헨티나는 온통 인육 맛을 본 약탈자들이 우글거리는 정글과도 같아서”(169쪽)라는 문장을 써 단순히 엽기, 잔혹, 미스터리를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님을 환기시킨다. 갑자기 아르헨티나 역사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