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조너선 프랜즌 지음, 홍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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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이다. 700쪽이 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 이상이다. 조금 무겁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금방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이 소설에 대한 엄청난 찬사가 읽기 전 살짝 부담이 되었는데 모두 읽은 지금 공감한다. 미국적 정서가 너무 강하게 담겨 있어 거부감이 생기는 대목도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 속으로 한발 다가가면 진중한 문장으로 다양하게 표현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 밑바닥에 유유히 흐르면서 결코 버릴 수 없는 진짜 사랑을 만난다. 

버글런드 가족이 이사한 후 그들이 살았던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 램지힐 지역 사람들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그들이 기억하는 버글런드 가족의 가장인 월터에 대한 신문기사에 의혹을 품는 장면이다. 그리고는 패티와 월터 부부가 램지힐 지역에 산 동안 일어난 일들을 간략하게 보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 이 가족이 지닌 문제점이 하나씩 드러나는데 처음에는 이것을 강하게 느낄 정도는 아니다. 특히 엄마 패티와 아들 조지의 삶은 불안과 일탈과 십대의 반항으로 가득하다. 이웃사촌들 시각에서 본 버글런드 가족 이야기가 끝난 후 패티의 자서전 형식으로 과거 삶이 밖으로 드러난다.

패티의 청소년기를 읽다보면 진보와 정치의 허울을 먼저 만난다. 패티는 농구선수다. 그냥 그런 농구선수가 아니라 상당히 실력 좋은 농구선수다. 키도 작지 않는데 어느 날 파티에 갔다가 강간당한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남자의 힘 앞에 어쩔 수 없이 섹스를 한 것이다. 남자가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는데 집에 와서야 그녀는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눈물을 흘리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녀가 강간당한 사실을 먼저 발견한 것은 농구부 코치다. 엄마를 불러 이 사실을 알리고, 남자를 고소할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강간한 남자의 부모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고, 부모와 잘 아는 사이다. 딸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날뛰어야 할 부모가 냉정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딸을 단념시킨다. 놀랍다. 진보와 인권을 외치는 부모가 딸의 미래를 산산조각내는 순간이다.

강간당했다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패티의 삶이 평탄하지 않다. 스토킹과 거짓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친구 엘리자를 만나고, 락 가수 리처드에게 성적으로 끌린다. 강한 독립심을 가지고 있지만 충분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그녀는 그 사건 이후 가족을 혐오하고 멀리한다. 농구에서 승승장구하지만 그 시절 청춘은 인간관계가 서툴기만 하다. 이 시기에 미래의 남편 월터를 만나지만 사실 그에게 끌린 것은 아니다. 월터는 리처드의 절친한 친구이자 윤리의식이 지나칠 정도가 강한 인물이다. 먼저 매혹된 것은 월터다. 그가 패티를 쫓아다니지만 그녀의 시선을 리처드에게 가 있다. 리처드는 자기 파괴적인 삶 속에서 문란하고 광란 같은 삶을 산다. 월터가 좋아했던 여자의 허울을 벗긴다는 명목으로 그 여자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같이 한 적도 있다. 이런 삶은 이 세 친구의 관계 속에 불안감을 던져준다. 각각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끌고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 대목에서는 왠지 모르게 포르노의 한 장면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품게 된다. 십대의 성욕을 넘어선 어른들의 욕망과 충동이 그런 의문을 품게 한 것이다. 조이와 코니의 관계는 순수한 욕망에 기반을 둔 것인데 삶의 험난함과 진면목을 만나게 되면서 변한다. 이것은 다시 패티와 월터와 리처드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욕망과 갈등이 빚어내는 삶의 모습이 너무나도 노골적이라 더욱 그렇다. 사랑, 불륜, 우정, 결혼 등을 기반으로 엮어낸 이들의 삶은 정말 미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인지 공감대를 완전히 형성하지 못하는 대목도 많다.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참 많은 이야기 거리를 품고 있다. 결혼, 사랑, 불륜, 섹스, 세대 간의 갈등, 인종, 환경, 정치, 사회문제 등을 다루는데 그 폭과 깊이에 많이 공감한다. 특히 소설 전반에 깔려 있는 사랑은 그 모든 문제를 품고 용서할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욕망에 공감하고, 그들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솔직한 사랑에 고개를 끄덕인다. 단순히 사랑만 다루었다면 힘이 약했을지 모른다. 2004년 한 해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솔직한 삶과 미국이 가진 온갖 문제점을 들여다보면서 이 소설이 지닌 힘을 깨닫게 된다. 콩가루처럼 부서진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은 이 소설의 백미 중 백미다. 하지만 진짜 매력은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 그들이 놓친 것을 깨닫고 다시 발견하는 장면이다. 자유를 넘어서 사랑과 용서로 다시 모이는 그들을 보면 교훈적이란 생각도 들지만 진짜 가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눈에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야기 중에 한국 유학생과 한국제품에 대한 작가의 반감이 표현된 부분이다.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지만 무슨 일 때문에 이런 표현과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개인적인 약속들이 많아 단숨에 읽지 못했지만 정말 매력적이다.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진 다른 소설 <인생수정>이 곧 출간되다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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