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수수께끼 - 플라네타 아르헨티나 문학상 수상작
파블로 데 산티스 지음, 조일아 옮김 / 대교출판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아르헨티나 문학 작가가 쓴 추리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을 주로 쓴 그가 첫 번째로 추리 소설에 도전 했다. 띠지에 나온 책 소개를 읽으면서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런 표현을 쓸까 의문이었다. 추리 소설의 모든 공식을 깬 새로운 형식의 탐정 소설이라니. 거기에 스페인 문학을 예전에 가끔은 재미없게 혹은 힘들게 읽은 기억이 있기에 이 소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살짝 걱정했다. 이 걱정은 읽기 시작하면서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영미나 일본 추리 소설에 익숙했던 나에게 이제 아르헨티나도 낯선 곳이 아니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시그문도 살바트리오다. 그는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제네바 북쪽 마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해왔다. 지독한 구두쇠인데 그가 돈 쓰는데 아끼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생일 때마다 아들을 위해 직소 퍼즐을 사주는 것이다. 아들이 지능을 단련시키려는 아버지의 조그만 바람이 담긴 선물이다. 이런 가정사를 간략하게 소개한 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열두 명의 탐정 중 한 명인 레나토 크라이그가 등장한다. 그는 조수 없이 활약하는 탐정으로 유명한데 이번에 그의 원칙을 깨고 채용공고를 낸 것이다. 살바트리오는 지원하였고 그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이렇게 그는 탐정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살바트리오가 해결하는 사건은 하나지만 그가 관여한 사건은 두 개다. 그의 스승 격인 크라이그가 마지막으로 해결하는 사건과 그가 크라이그 대신 파리에 가서 만나게 되는 십이탐정과 관련된 살인사건이다. 비교적 짧게 다루어지는 첫 번째 사건은 그가 탐정으로 성장하는데 조그마한 기여를 하고, 탐정의 삶 뒤에 숨겨진 실체를 알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여기서 재미난 점은 아들라테레란 존재다. 흔히 조수로 불리는데 작가는 기존의 탐정 소설에 나온 조수들을 살짝 비틀고 그림자처럼 처리하면서 그 가치를 희화시켜 놓았다. 탐정과 조수 사이의 벽을 굳건하게 만들면서 철저한 조연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 조수들이 탐정을 활약을 기록하고 발표하는 역할을 맡는데 이것은 기존 탐정 소설에서 조언자이자 관찰자 역할을 했던 조수 역할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이탐정이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열두 명의 탐정인데 처음으로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모이게 된다. 때는 1889년 그 유명한 에펠탑이 처음으로 공개된 해다. 그리고 이 열두 탐정이 모여 각자가 생각하는 탐정 역할을 설명하는 부분은 예전에 읽은 추리 소설의 오마주가 아닌가 할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열두 명의 탐정이 모였으니 모든 범죄자가 숨을 죽일 것 같은데 놀랍게도 파리의 대표 탐정 자리를 놓고 아르자키와 겨루던 탐정 다르봉이 에펠탑에서 죽는다. 실족으로 인한 사고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 의한 타살일까 논쟁이 있는 가운데 파리 대표 탐정 중 한 명인 아르자키가 이 사건을 맡고 그의 조수로 살바트리오가 선택된다. 

이 두 콤비가 멋진 활약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인 탐정 소설인데 작가는 역시 평범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조수는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탐정에게 숨기고, 탐정은 조수를 동반자로 대우하지 않는다. 이 와중에 다르봉이 수사했던 사건이 에펠탑 건설과 관련된 협박임을 알게 된다. 당연히 먼저 이 사건을 수사하는데 쉽게 범인의 윤곽이 보이지 않는다. 이어서 또 다른 사건들이 발생하게 되면서 십이탐정들은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과연 이 가설대로 다음 살인사건이 발생할까 생각하는 순간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은 다시 첫 번째 사건 해결과도 연결되는 부분이자 십이탐정 중 한 명이 말한 것과 이어진다. 

누가 탐정을 죽였고, 이어지는 사건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이제는 누구나 당연하게 파리의 대표 상징으로 생각하는 에펠탑에 대한 당시 반대 여론과 파리만국박람회의 소소하지만 재미난 풍경과 에피소드는 자잘한 즐거움을 준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지만 조금만 안다면 그 시기의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나 문화충돌 등이 주는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큰 재미는 사건을 조사하고 범인을 추리하고 쫓는 과정이다. 과학수사의 기초를 곳곳에서 보여주며 시대의 변화를 알려주는 부분도 나온다. 이런 세밀한 부분들과 악의 유혹을 한데 엮어서 기존의 벽을 깨부순다. 바로 이 부분이 마지막 반전과 더불어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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