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처유상수. 정말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말이다. 그렇게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매번 만나게 되는 상수(上手)들은 나를 채찍질한다. 운동 좀 한다고 느끼는 순간, 책 좀 읽는다 하는 순간, 일 좀 안다고 하는 순간, 책 좀 가지고 있다고 하는 순간, 말 좀 한다고 하는 순간, 운전 좀 한다고 하는 순간. 거의 모든 순간마다 상수들을 만났다. 그런데 더 나를 채찍질하는 것은 이런 상수들도 그보다 더한 상수를 만난다는 것이다. 과히 천외천(天外天)의 세상이다. 이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면서 문화유산답사 상수의 글에 빠져들었다. 이 답사기가 다룬 첫 번째 장소는 경복궁이다. 서울에 살면서 수차례 갔지만 솔직하게 제대로 감상한 적이 없다. 몇몇 곳이 지금도 인상에 남아 있지만 그곳에 얼마나 멋지고 과학적이고 의미 있는 곳인지 전혀 몰랐다. 그리고 내가 그곳을 갔을 때는 한창 공사를 하던 중이라 지금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회루의 모습과 궁전에서 보았던 굴뚝은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인상에 남아 있다. 굴뚝의 경우는 왕궁에도 굴뚝이 이렇게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던 것 같다. 답사기를 읽으면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화려한 궁궐이나 나무나 화계 등이 아니라 박석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밟고 지나갔던 그곳이 이제 경복궁에 가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아마도 최근에 콘크리트나 시멘트 길만 걷다보니 이런 바닥에 더 정감이 가는가 보다. 순천 선암사 이야기는 내가 잊고 있던 가을 들판의 아름다움과 예전에 잠깐 느꼈던 절을 걸어 올라가면서 느끼는 싱그러움과 여유를 깨닫게 했다. 사실 유물에 대해 저자가 아무리 잘 설명해주어도 나의 감성과 깨달음이 단숨에 그것을 알 정도는 아니다. 다만 새롭게 그곳을 보고 좀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기회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달성 도동서원은 이전에 갔던 안동 하회마을 근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서원을 떠올려주었다. 그냥 갔다가 그 서원의 아름다움과 풍경에 반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거창과 합천의 답사기는 매번 집으로 향하는 길에 지나갔던 길이기에 좀더 색다르게 다가왔다. 한창 차를 몰고 다닐 때 이 정보를 알았다면 잠시나마 둘러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화강암 예찬인데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부여, 논산, 보령 편에 오게 되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추억을 만나게 된다. 그중 돌담길은 아련한 기억 속에서 갑자기 불쑥 치솟는다. 여행을 갈 때 조그만 길이나 골목을 보면 나도 모르게 들어가 보고 싶고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어진다. 어릴 때 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 흙과 돌로 만든 벽이 이어져 있었고 그 길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 본 풍경과 한 데 어우러져 떠오른다. 추억을 넘어 현실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역시 저자의 휴휴당이다. 그 멋진 집과 그 마을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에피소드들이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부여에 대한 멸망 이미지를 바꿀 의견을 읽으면서 시대와 유적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관촉사 은진미륵은 조금 낯익은데 그것은 친구의 눈과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가서 본다면 어떨까?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다. 그냥 무심코 지나갔거나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한 곳들이나 유적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 가슴에 와 닿은 말은 개발이 파괴로 이어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들이다. 편함에 익숙해지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를 잃은 현실의 나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여행이 목적지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속도에 열을 올리고 가는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즐거움을 잊고 있다. 불과 몇 주 전 설악산을 갈 때도 터널을 통과해 목적지에 빨리 갈 생각을 했지 한계령이나 미시령을 넘어가면서 만날 내설악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냥 무시했다. 그러면서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경치가 아름답고 멋있다고 감탄했다. 회사 워크숍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를 되지만 그만큼 나의 감성이 무디어졌고 여유를 잃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수의 안내에 따라 혹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 가는 길에 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