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8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 기억 속에 누군가를 왕따로 만든 적은 없다. 하지만 이 기억은 나만의 것이다. 혹시 누군가가 학창시절 나를 비롯한 누군가에게 왕따를 당했다면 나의 기억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학창시절 한때의 오락거리였을 왕따가 그 대상자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었을 텐데 가해자들은 그냥 한때의 지나가는 바람처럼 잊고 만다. 아니면 가끔 그 당시 자신들의 행동을 그냥 단순한 장난 정도로 치부한다. 이런 입장이 왕따 문제를 왜곡하고 축소한다. 그리고 이 왕따 당하는 학생을 대하는 교사와 주변 학생들의 태도도 딱 그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 소설 속에도 나오듯이 왕따로 괴로워하던 학생이 자살한 이유를 잘 모르는 것처럼 대응하던 교사들과 반 친구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다. 

왕따를 당해보지 않은 나에게 왕따 문제는 개인이 극복해야할 문제였다. 이런 입장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이 십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마 그 당시는 나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단련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던 시기였다. 하지만 왕따 관련 소설과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왕따로 괴로워하는 학생과 그 부모를 대하는 교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폐쇄적인 학교가 얼마나 이기적인 공간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왕따를 결국 피해자가 풀어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따 당하는 학생의 나약함과 용기 없음을 질타하는 그들의 말에서 그 어떤 기대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런 교사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실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듣고 상담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교사 이야기를 들은 적도 많기 때문이다. 

왕따 이야기를 길게 먼저 쓴 것은 이 소설이 왕따 당하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사팔뜨기 눈을 가진 ‘나’는 정말 악질적인 왕따를 당한다. 단순한 따돌림이나 조그마한 구타 정도가 아니라 화장실 물을 마시고, 분필을 먹고, 배구공을 쓰고 축구공처럼 맞는 등의 악질적인 놀이 대상이 된다. 이렇게 당하는 것을 보면 먼저 왜 바보처럼 당하고만 사냐? 고 묻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개인의 노력으로 풀릴 수 있다면 세상에는 왕따로 고민하고 자살하는 학생들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련하고 바보 같은 이들의 행동을 욕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용기도 대단하다. 가장 쉬운 도망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지마가 왕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왕따 당하는 소년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해진다. ‘우리는 같은 편이야.’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지만 니노미야 패거리의 장난은 아닌 것 같다. 편지는 계속 전달되고, 이것을 은근히 기다리게 된다. 5월 어느 날 편지에는 만나고 싶다는 말이 적혀있다. 누군지 궁금하다. 시간을 맞춰 나간다. 그곳에서 그는 역시 반 여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고지마를 만난다. 이렇게 반에서 왕따를 당하는 두 소년소녀가 만났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가 당하는 왕따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이 둘의 진솔하고 푸른 우정은 왕따의 괴로움도 잊게 만들 정도다. 하나의 새로운 변화가 오기 전까지는.

열네 살의 ‘나’와 고지마는 아직은 불안정한 시기에 살고 있다. 화자가 친구들의 악질적인 장난에 코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으면서 이 불안과 공포는 점점 커진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고지마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을 정도다. 잠도 제대로 오지 않고 학교 수업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이때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니노미야 패거리 중에서도 조금 특이한 모모세와의 대화는 강자의 이기주의적 궤변으로 가득하지만 왕따 문제를 어쩌면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모르겠다. 특히 모모세가 사시 때문에 왕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 화자가 느낀 감정은 정말 복잡하다. 열네 살 소년이 그 궤변을 이해하는 것이 무리인 것처럼 말이다.

조그만 틈이 언제나 큰 벽과 거리를 만든다. ‘나’의 무응답이 고지마로 하여금 더욱 자신을 학대하는 쪽으로 몰고 간다. 불쌍한 아빠를 위해 씻지 않았기에 왕따를 당했는데 이제는 먹는 것마저 줄이고 있다. 자신을 학대하고 이런 자신의 감정을 화자가 이해주길 바란다. 이 둘의 사이가 더욱 벌어지는 것은 나의 사시에 대한 입장 차이다. 고지마는 사시가 그를 규정해주는 것이기에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집착한다. 단 하나 있는 친구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고민하는 화자의 내면은 복잡하다. 이런 고민 중에 발생하는 사건 하나는 이야기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이 파국을 통해 모든 사태의 진실이 밖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나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왕따 문제는 해결되었나 하고.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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