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와일더 감독의 기념비적인 고전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1950년 작)를 모티브로 새롭게 각색하여 소설로 만들었다. 예전에 한창 영화를 볼 때 이 영화를 구해 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비디오를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는데 어느 날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하지만 이때도 나의 나쁜 버릇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손에 비디오가 들어오자 앞부분만 조금 보다가 그만 둔 것이다. 소장용으로 고이 모셔둔 채로 말이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비디오도 고장이나 볼 수도 없지만.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해설을 보니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고 한다. 당연히 <선셋 대로>와도 다른 부분이 많다. 시대의 변화와 작가의 취향과 특색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은 모양이다. 하지만 기본 골격은 오마주란 표현을 사용할 정도니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예전에 본 <선셋 대로>의 도입부와 이 소설의 도입부는 상당히 다르다. 그 차이가 앞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많은 변화의 시발점으로 작용한다. 원작 영화에 대한 흐릿한 기억과 비교해도 너무 다르다. 읽으면서 원작 영화보다 예전에 본 영국 누아르 영화가 더 많이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미첼이 교도소에서 출소하면서 시작한다. 폭행죄로 그는 감옥에 3년 있었다. 그런데 출소하는 날 거리의 부랑자에게 거침없는 폭력을 휘두른다. 시한폭탄 같은 느낌을 준다. 노숙자 조에게 잡지를 한 권 사고 녹턴이 소개한 집으로 들어간다. 멋진 아파트다. 좋은 옷과 책들이 가득하다. 대부업을 하는 녹턴이 빚 대신 압수한 집이다. 불법과 폭력의 냄새가 풀풀 난다. 녹턴은 미첼에게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한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도와준다. 이 일 때문에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난폭하고 끔찍하고 잔인한 암흑가의 삶이 조금씩 드러난다. 녹턴의 일을 돕는 것이 불법이라면 그가 은퇴한 여배우 릴리언 저택에서 잡역부로 일하게 된 것은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평온한 잡역부로 그냥 놓아두기에는 그가 지닌 능력이 범상하지 않다. 그리고 얼마 후 노숙자 조가 폭행을 당해 죽는다. 이 일은 그의 감정을 건드린다. 시에서 해주는 화장 대신 자비를 들여 매장을 하고 시간이 나면 묘지를 방문한다. 조에 대한 그의 감정은 여동생 브라이어니를 제외하면 가장 친밀한 것이다. 가족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미첼의 감정을 풀어내는 창구 역할을 맡는다. 처음에 이 책을 들고 읽기 전만 해도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상당히 머리가 복잡하고 감정이 엉망진창으로 엮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과 개성 강한 캐릭터 덕분에 쉽게 몰입했고 빠르게 읽었다. 거침없는 표현과 행동은 간결한 문장과 만나 캐릭터를 더 부각시킨다. 잘 기억나지 않는 영화와 비교하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은 날아가고 미첼에게 집중한다.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행동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는다. 상황과 분위기가 계속해서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다음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오는 수많은 추리소설과 음악들은 낯설음과 반가움을 교차하게 만든다. 제대로 목록이 만들어지고 번역된 것 중 읽지 않는 책이 있다면 읽어 보고 싶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서 강렬함을 품어내는 미첼에 결코 지지 않는 존재가 있다. 그는 바로 릴리언 저택의 집사 조던이다. 처음엔 그냥 조금 깐깐한 보통의 집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미첼 주변에 사건이 발생하면 할수록 이 집사가 보여주는 행동과 능력이 돋보인다.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미첼이 평범해보일 정도다. 그가 있기에 핏빛 오마주가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미첼과 관련된 이야기 속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미첼을 둘러싼 여자들이다. 여동생 브라이어니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좀도둑질에 능숙하다. 그의 유일한 혈육이자 약점이다. 그와 정사를 나누는 두 여자 릴리언과 애슬링은 성욕과 사랑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그가 지닌 윤리관을 그대로 대변한다. 이 소설은 이런 관계들을 간결한 문장과 하드보일드 문체로 거침없이 표현하고 보여준다. 잔혹한 핏빛 묘사에 거부감이 없다면 광기와도 같은 그들의 행동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