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브라이슨의 책이란 것만으로 선택했다. 이전에 읽은 책이라고는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어 산책>이 전부다. 이 책도 이번 책처럼 상당히 두툼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덕분에 그의 책은 대부분 구매해놓았다) 그때의 경험이 강렬했기에 이 책의 두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책은 두께에서 조금 얇을지 모르지만 한 쪽의 분량은 더 많다. 이런 구성은 요즘 같은 나의 집중력을 생각하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빠르게 한 쪽 한 쪽 넘기는 즐거움이 조금 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박식함과 위트 있고 유머스러운 글에 푹 빠져 있었다. 

원제는 다. 아마도 전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란 책의 영향으로 원제와 다른 제목이 붙은 모양이다. 이것은 역자도 지적했듯이 ‘발칙한’이란 단어가 들어간 일련의 책 제목과 비슷한 선택이다. 물론 집에 관해 저자가 서술한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맞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제목이 다른 책의 아류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뭐 저자가 하나의 시리즈로 계속 이런 책을 낸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사생활. 사실 이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 속 서민 생활을 보아도 사생활이란 것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이 불과 수십 년에 불과하다. 조그마한 집에서 가족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현실에서 사생활이란 것이 제대로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점점 사생활에 대한 요구가 거세어지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각자의 방을 하나씩 가지면서 이런 사생활이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가족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너무 심하게 되면 은둔형 외톨이가 생기게 되지만.

이 책은 집과 사생활의 짧은 역사란 원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의 시작은 집이다. 집이란 하나의 거대한 공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각각 차지하는 공간을 하나씩 풀어내는 방식이다. 다루고 있는 공간을 보면 홀, 부엌, 설거지실과 식료품실, 두꺼비집, 거실, 식당, 지하실, 복도, 집무실, 정원, 보라색 방, 계단, 침실, 화장실, 육아실, 다락 등이다. 단순히 목차만 보면 이런 공간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이 공간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왜 이런 공간이 생겼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이와 관련된 인물과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하고 말이다. 

저자가 이런 탐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리의 역사가 대부분 거시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반해 미시사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에 대한 조그마한 반발이다. 뭐 그 시작은 집에서 흔히 보게 되는 소금병과 후추병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집구석에 앉아서 세계사를 쓰게 되는 셈이 된 것이다. 집안이란 공간 속에서 그 각각의 방이 사생활의 진화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살펴보는데 “욕실은 위생학의 역사, 부엌은 요리의 역사, 침실은 성행위와 죽음과 잠의 역사” 같은 식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아! 하고 감탄했다. 내가 지금 있는 이 공간이 역사 속에서 어떤 진화를 거쳐 왔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황하게 하나의 공간을 역사 속에서 위트와 박학다식한 지식의 나열로 설명하는데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이란 역사와 동떨어진 대피소가 아니다. 집이야말로 역사가 끝나는 곳이다.” 란 말처럼 집과 역사는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집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공간이다. 현재 우리들이 아파트에 열광하고 그토록 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공간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과학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저자처럼 거창하게 역사를 끌고 와서 하나씩 풀어낼 수 있지만 그냥 고개만 돌려도 우리는 그 변화를 볼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40평대 이상을 선호하고 그렇게 많이 지었는데 이제는 미분양과 매매의 단절이란 현실을 마주한다. 최근에는 베란다 확장이 유행하고 있고, 층간 소음은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정보들이 누적되면 우리 시대의 삶을 역사 속에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불과 150년 사이에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국만 본다면 백 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다. 특히 물질적 풍요는 그 어느 시대보다 대단하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절약이 하나의 덕목이자 생활이었는데 어느 순간 소비가 모든 것의 최우선으로 돌아섰다. 양말은 기워 신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구멍이 조금만 나도 버린다. 음식 쓰레기로 낭비되는 것도 엄청나고 편리라는 것을 위해 낭비되는 자원도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보면 우리 시대만 이런 낭비가 있은 것은 아니다. 미국과 영국 역사 속에서 부자들이 보여준 낭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유행이란 것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지금 우리들이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럭셔리에 열광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낭비하는 것이 이 시대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비록 그 시대는 소수의 부자와 귀족이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계급이나 부와 상관없이 벌어진다는 것이 차이다. 만약 집에 대해,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상상 그 이상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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