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랑 피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9
메리 E. 피어슨 지음, 황소연 옮김 / 비룡소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한 소녀가 교통사고 후 일 년만에 깨어난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잃어버렸고,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을 본 어머니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처음 이 장면을 읽을 때만 해도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단지 혼수상태에서 1년 만에 깨어난 사실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읽으면서 다른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적이 의미하는 바도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한 소녀와 인간, 죽음과 사랑, 윤리와 과학에 대한 고찰을 담은 이야기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문제고,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사고 후 깨어난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불안해 보인다. 음식도 정해진 것만 먹어야 한다. 지금까지 읽은 책과 본 영화 등에서 얻은 통밥은 그녀의 정체를 금방 파악한다. 이어서 나오는 단서들은 이런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다. 작가는 약간 미스터리하게 그녀의 정체를 숨기면서 이야기를 중반까지 끌고 나가지만 곧 그녀가 순수한 의학의 힘으로 깨어난 것이 아님을 밝힌다. 그것은 제나 아버지의 사업과 관계있고, 그 시대 윤리 문제와 충돌이 있는 일이다. 이런 설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를 미래의 가정 속으로 끌고 들어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다.
제나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고 노력한다. 가끔 섬광처럼 떠오르는 기억의 한 자락들은 너무 파편적이다. 어린 시절 비디오를 통해 그 기억 중 일부를 되살려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이런 기억 상실에 대한 순수한 고민은 그녀가 세상에 한 발 내딛고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실을 아는 순간 바뀐다. 기억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것으로.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외할머니 릴리다. 유전자 변화를 통해 벌어진 과거 사건들을 말하고, 순수한 품종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녀는 과학을 통해 재탄생한 제나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다시 그 시대 과학 생명 윤리와 맞닿아 있다. 소설 속에서 과거로 다룬 우리의 현실 혹은 미래는 그런 점에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간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살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할 것이다. 이런 만약의 가정에서 출발한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순수한 물음이자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부활 같은 기적을 기대하며 단순히 생명만 유지시키고, 또 다른 작품은 온갖 기계나 생명공학을 이용해 존재 자체를 재생시킨다. 이럴 때 우리가 받는 인상대부분은 심정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이성적으로 거부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그것이 단순하거나 괴물 같은 경우는 더욱 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당사자라면 어떻게 할까?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나가 자신의 정체를 안 순간 두려워하고 고민한다. 그녀의 인식이 그 시대의 윤리 의식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녀의 부모는 그 연장선을 벗어났다. 너무나도 분명한 이유인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자기들의 능력으로 그녀를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대로 떠나보내기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가족 내 인식과 가치관의 충돌은 이 소설을 단순한 SF를 넘어 성장소설로도 읽게 만든다. 그리고 부모가 사용한 방법은 그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전뇌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다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이런 철학적 물음은 제나의 고민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