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비가
쑤퉁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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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슬픔과 나쁜 일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화씨 집안 20여년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딱 그대로다. 좋은 일은 보이지 않고 나쁜 일만 계속 생긴다. 나쁜 일이 가난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겠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한 것은 사실이다. 이 소설 속 화자인 화진더우는 그런 점에서 이 가혹한 현실을 죽은 후에도 그대로 지켜보는 아픔을 겪는다. 귀신이 되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영화나 다른 소설에서처럼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그냥 지켜보는 것밖에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화씨 집안 비극의 시작은 화진더우의 아내 펑황이 자살하면서부터다. 평소처럼 출근한 그녀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 어떤 유서도 이유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이 자살 소식에 화진더우는 이성을 잃고 공장에 불을 지른다. 하나의 슬픔이 다른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첫 장면이 재판 장면인 것은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이자 이 집안의 비극에 너무 감정 이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 덕분에 조금은 더 냉정하게 이 집안의 비극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귀신이 된 화진더우가 안타까움과 후회하는 마음에서 자기 집에 머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한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자신과 가족 모두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살아 재판 받을 때도 후회가 되었지만 죽은 후에도 그 후회는 멈춰지지 않는다. 어쩌면 20여년을 참죽나무길에 머물게 되는 것이 이런 잘못된 행동에 대한 처벌인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그냥 무력하게 쳐다만 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이자 슬픔인지 절실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말이다. 귀신이기에 더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슬픔이다. 유일한 아들 두호의 엇나간 삶이나 사랑스러웠던 둘째 딸 신란의 임신중절 수술이나 다른 딸들의 슬픈 일까지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알면 더 병이 되는 그런 상황에 그가 놓인 것이다.

분명히 이 소설은 화씨 집안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비극에 동조하기보다 관찰자의 위치를 그대로 유지한다. 화진더우를 통해 감정의 기복이나 절망에 찬 목소리를 내지만 그것은 현실의 벽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중국의 삶을 보게 된다. 점점 자본주의화가 되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낭비와 과소비를 말이다. 이런 시대의 변화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화진더우의 누이동생이자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하는 고모다. 

이 소설에서 화진더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고모다. 오빠와 올케가 모두 죽은 상태에서 네 딸과 아들 하나를 키워야하기 때문이다. 큰 딸들이 돈을 벌어올 때도 그녀는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그녀들이 어릴 때는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고 입고 싶은 것을 입지 않고 힘들게 키웠다. 집안에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두후는 그녀가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웠다. 식은 밥을 먹고 있으면 따뜻한 밥을 해주고, 늦게 들어오면 찾으러 나갈 정도로 애지중지했다. 하지만 그는 엇나가고 버릇없고 자기중심적인 게이가 되었다. 그의 변화와 우유부단함과 용기 없음은 또 다른 슬픈 일로 이어지게 된다. 거기에 고모가 계획한 몇 가지 일들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고, 그 비극은 집안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녀가 한 일이라고 그 가족을 위해 모든 희생을 했는데도 말이다. 

늙어죽을 때 그 사람의 삶이 제대로 평가를 받는다거나 전화위복이란 말이 이 집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행복한 결말조차도 말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살한 부모와 사고로 죽은 딸과 온갖 나쁜 일만 가득한 집안에는 특히 그렇다. 대부분의 현실이 바로 이런 삶의 연속이다. 언론이나 영화에서 성공한 삶이나 행복한 노후를 즐기는 사람이 나오지만 조금만 눈을 우리 곁으로 돌이면 비극과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한 집안들이 가득하다. 화진더우가 마지막에 누이의 죽음을 보면서 옛날로 돌아가면 삶이 완전히 바뀔 것처럼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심이 먼저 드는 것도 바로 이런 현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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