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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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박범신의 소설을 읽었다. 90년대 그의 소설을 몇 권 읽었지만 나의 관심사는 다른 사람이었다. 특히 이청준과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빠져 있던 나에게 그의 소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평론가들의 평마저 그렇게 좋게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그 당시 취향 탓에 그의 많은 책이 독서 목록에서 빠졌고, 그 이후 머릿속에선 왜곡된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았다. 이런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게 된 것은 최근에 나온 <은교> 때문이다. 아직 읽지 않았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평을 보니 노작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손에 넣은 <비즈니스>는 한국과 중국 동시연재라는 호재와 더불어 새롭게 그를 인식하는 계기를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 기대는 적중했다.

비즈니스. 이 영어 단어를 사용하면 뭔가 고급스러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사업이란 단어 대신 비즈니스를 입에 달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단어 하나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 덕에 사람들은 더욱 이 단어를 애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비즈니스보다 한 단어를 더 붙인 비즈니스맨이란 단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 자꾸 듣다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자주 이 단어를 말한다. 영어가 일상대화에서 더 늘어나고 있는데 가끔 깜짝 놀란다. 한글을 잃어가는 나 자신이 보여서 그렇다. 단순히 영어를 사용해서 문제가 아니라 나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정체성. 한 사람을 알려주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내가 나로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나로 있기가 쉽지 않다. 나는 가만히 있고자 하지만 주변에서 너무 흔든다. 아무리 뿌리를 깊숙이 박고 바람을 마주한다지만 그들은 그 뿌리가 뽑힐 때까지 바람을 불고 흔든다. 그러니 어느 나무가 뿌리 뽑히지 않겠는가. 이 소설 속에선 화자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녀는 조용히 살고자 했지만 남편의 실패와 아들의 교육이 그녀를 매춘녀로 만들었다. 남편의 실패가 생존 속으로 그녀를 내몰 수는 있다. 하지만 아들이 외고 가기를 바라며 몸을 판다니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이 슬픈 악순환은 그녀와 아들의 관계를 멀리하게 만들고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든다.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왜 그런 짓까지 하느냐고. 사실 나도 그 혹자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과 공포와 원망 속에서 살아야 한다. 자신이 해주지 않아 자식이 처질 경우 그 원망을 감당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의 눈과 지탄을 정면에서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은 끝없이 그녀를 흔들어댄다. 이 때문에 그 혹자에서 잠시 벗어날 때도 많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들처럼 하층민으로 살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그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믿고 있다.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어느 정도가 문제다.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매춘을 비즈니스로 포장하는 것은 양심과 불안을 숨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그 속에 숨겨진 욕망을 이 단어 하나로 가리려는 것이다. 몇 가지 사업 원칙을 세워 감정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삶이 언제 자기 마음대로 움직였던가. 자기합리화와 삶의 피곤함이 쌓여 있던 그녀가 한순간 무너지고, 잊고 있던 감성과 감정을 되살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대도 타잔과의 만남과 그의 아들과의 교류는 그녀가 주변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 만남이 정상적이지 않아 숨겨질 수밖에 없으니 더욱 그렇다. 

분량이 그렇게 많은 소설은 아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씩 복기를 하면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만나게 된다. 자본의 폭력성, 가족이란 무엇인가, 아이들의 교육 문제, 섹스 등으로 대변되는 큰 줄기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주리의 그 뻔한 결말을 마주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삶의 이면을 생각하게 된다. 또 타잔으로 불리는 한 도둑에 열광하는 시민들과 그에게 도둑맞은 물품을 숨기기 바쁜 부자들을 간단하게 대비시켜 우리 사회의 양극단을 보여준다. 이것은 한 도시 속에 자리 잡은 구도시와 신도시의 삶이기도 하다. 자본의 욕망에 자신을 팔아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달려가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사랑, 가족, 우정, 환경, 미래 등과 같은 단어는 자본이란 한 단어에 무릎을 꿇었다. 이 소설 속에선 그 단어가 바로 비즈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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