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발레리 통 쿠옹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도미노로 만들어진 표지가 인상적이다. 한 사람의 삶이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음을 생각할 때 도미노는 어쩌면 우리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조그마한 행동이나 말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거나 행복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혹은 그 반대에서 알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은 나에서 시작하여 나로 끝난다. 하지만 좀더 이것을 확장해 나간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연결을 몇 사람에게로 한정시킨다면 어떨까? 이 소설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결코 두툼하지 않은 이 소설에서 네 명의 주인공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은 하나의 사고, 하나의 양보에서 비롯한 것이다. 미혼모인 마릴루는 정체가 의심스러운 컨설팅 회사 비서로 일한다.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두툼한 복사물을 제때 사무실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차는 막히고, 지하철은 자살 소동으로 운행이 중단된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해고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최선을 다해 달려 시간에 맞추려고 그녀는 노력한다. 

알베르는 암을 선고받은 노인이다. 그의 삶은 외롭다. 그가 평생 노력한 것은 자신의 삶이 어머니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운 좋게 탄 택시로 원하는 찻집으로 가서 먹고 싶었던 마카롱을 잡는다. 그때 한 여자가 그의 마카롱을 탐낸다. 양보한다. 기분 좋게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온다. 한 건물의 폭발로 길이 막힌다. 이 사고로 인해 조금 늦게 집에 도착하고 그는 자라면서 그가 받았던 모든 불합리하고 의문투성이의 원인을 듣게 된다.

프뤼당스는 흑인 변호사다. 그녀는 실력이 있지만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의뢰인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변호사 사무실의 공동대표란 명함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다. 화려하고 멋져야 할 그녀의 과거는 어둠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한 남자와 관련된 일이다. 이때부터 그녀는 위축되어 있다. 그런 그녀에게 기회가 온다. 공동대표 클라라가 마카롱을 먹고 두드러기가 생긴 것이다. 그날 클라라가 참석해야 할 회의에 대신 참석해야 한다. 기회다. 

성공한 영화 제작자이자 교수인 톰은 리비에게 청혼하려고 한다. 매력적인 리비에게 푹 빠진 그가 큰 보석이 박힌 반지를 산다. 막힌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힘껏 페달을 밟는다. 갑자기 사고가 발생한다. 적지 않은 부상을 입는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한 여자 때문에 생긴 일이다. 부상을 입은 상태로 리비의 집으로 가는데 그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뒤엉킨 두 여자다. 리비와 알린.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환상이 산산조각난다. 이제 리비의 실체를 본다.

이렇게 각각 다른 네 명의 남녀가 사고와 우연으로 하나로 이어진다. 마릴루는 지하철 투신자살 때문에, 알베르는 한 건물의 폭발 때문에 생긴 길 막힘으로, 프뤼당스는 알베르의 호의에서 비롯한 마카롱 때문에, 톰은 마카롱은 먹은 클라라 대신 산책한 빅투아르 때문에 생긴 사로로 연결된다. 아마 책 속에서 이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한 개인의 우연들일 뿐인 사건들이다. 하지만 이 우연들이 하나의 고리로 묶이는 순간 그들의 운명은 바뀐다. 그리고 왜 표지가 도미노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삶이 지닌 힘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보게 된다.

많지 않은 분량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재미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더 가슴에 와 닿은 것은 그들의 삶과 그들을 이어지는 운명의 힘이다. 아니 단순히 운명의 힘이라고 말하기엔 그들이 삶에 들인 노력이 너무 저평가되었다. 후반으로 가면서 하나의 우연과 사고가 어떻게 연결되고, 어두웠던 과거와 현재가 어떤 미래로 이어지는지 알게 된다. 어떻게 이들이 연결될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 것이 하나씩 그 실체를 드러낼 때 가슴 한 곳에 따스한 기운이 조용히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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