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와인
엘리자베스 녹스 지음, 이예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와인과 천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 책이다. 다음으로 천사 새스와 인간 소브랑의 55년에 걸친 비밀스러운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란 책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영원히 사는 천사와 불과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과의 우정이라니 왠지 천사가 불쌍해 보인다. 이런 불쌍한 생각을 하게 된 되는 영원히 사는 벌을 받아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을 보아야 했던 한 인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 몇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후 그들의 만남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야기는 1808년부터 년도 순으로 진행된다. 소브랑은 사랑하는 여자와의 결혼을 부모가 반대하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셀레스트의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죽은 것 때문이다. 하지가 지난 지 일주일이 된 그날 와인 두 병을 지니고 산으로 올라간다.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가 만난 것은 천사 새스다. 이때부터 이 둘의 만남은 매년 이 날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새스의 조언을 새겨듣고 사랑하는 셀레스트와 결혼한다. 

천사와의 만남이 경건해야 할 텐데 인간인 소브랑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일상의 일을 말하고, 그에게 조언은 구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언제나 자기위주다. 처음 셀레스트와의 결혼을 보면서 앞으로 이 둘의 행복한 삶과 천사의 도움으로 거대한 와인 생산자로 변신할 그를 기대했다. 그런데 그는 곧바로 나폴레옹을 쫓아 러시아로 간다. 이미 알다시피 그곳은 프랑스 군대의 처참한 죽음이 기다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친구이자 유혹자였던 밥티스타를 잃게 된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친구 밥티스타가 남긴 포도밭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그는 마을 유지로서 자리를 잡고, 한 가족의 가장으로 삶을 이어간다.

이런 삶의 일상 속에 천사 새스와의 만남이 이어진다. 이 만남은 그가 일 년 동안 기다려온 중요한 행사다. 이 만남을 통해 판타지와 종교와 신화 등을 경험한다. 천사란 존재가 이미 그것 모두를 담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새스를 통해 천국과 지옥의 모습, 하느님과 루시퍼와 창조주의 존재, 수많은 다른 나라의 삶 등을 듣는다. 이런 이야기는 현실에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브랑의 이야기에 멋진 배경을 더해준다. 그리고 소브랑과 새스의 사랑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연도 순으로 이어지는 형식 속에 담긴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소브랑의 가족들 이야기고, 다음으로 그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다. 이 모든 것보다 강하게 흐르는 것은 소브랑과 새스의 우정과 사랑이다. 천사의 존재를 알릴 수 없기에 가족에게 오해도 받고, 그가 타락천사임을 들으며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종교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그들의 사랑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 뿐이다. 비록 그것이 육체적인 사랑으로 변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처음에 그렇게 중요했던 셀레스트는 뒤로 가면서 그 존재가 점점 약해진다. 물론 완전히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이미 짐작했던 사실을 마지막에 알려주면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가족의 다른 사람에 비해서, 중반 이후 백작 부인인 오로라에 비해 너무나도 비중이 줄어든다. 이 부분을 보면서 부부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비밀을 공유하지 못하면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런 소통의 부재는 마지막에 큰 사건의 비밀 하나를 폭로하면서 마무리된다. 

인간세계로 내려온 천사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이 소설은 판타지이자 종교소설이 되었다. 기독교의 하느님이 창조주가 아니라는 부분에서 조금 놀라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브랑과 새스의 사랑이다. 비밀스러운 이 둘의 사랑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숨겨지고, 오해받고, 밝혀지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긴 세월 속에 이어지는 이 사랑은 결코 육체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가독성 좋은 문장과 이야기는 충분히 숙성되어 있지만 취향을 많이 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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