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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큰 기대 없이 읽었다. 그런데 대단하다. 다섯 살 아이의 시선으로 본 세계가 놀랍다. 많은 수식어로 이 소설을 평할 수 있지만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읽는 것이다. 세부적인 부분에서 흠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상 밖으로 재밌고 잘 읽히는 문장과 이야기 구조를 가졌다. 힘든 일정 속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짬짬이 읽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정확하게 말해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다.
잭의 다섯 째 생일날에 이야기가 시작한다. 벽장에 자러간다는 말에 먼저 고개를 갸웃한다. 이어지는 아이와 엄마의 대화는 보통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연속해서 나오는 환경이 충격을 던져준다. 얼마 전 해외 토픽에서 본 사건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주 충격적이어야 할 장면들이 일상의 삶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소설이 지닌 매력 중 하나다. 방에 갇힌 엄마의 시선이 아닌 다섯 살 잭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방에서 살았고 한 번도 방밖으로 나간 적이 없고 그곳만이 세상의 전부인 아이의 시선으로 말이다.
충격적 범죄의 진상이란 표현보다 더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아이가 인식하는 세계가 갇혀 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엄마의 지식을 통해, 몇 권 되지 않는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쌓아가는 아이가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가 더 흥미로웠다. 처음엔 상당히 조숙한 모습을 보여줘서 놀랐는데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가면서 이 조숙함은 과장된 것임이 드러난다. 이때 갇힌 세계 속에서 인식하는 세계와 열린사회 속에서 인식하는 세계가 다름을 알게 된다. 갇힌 방 속에서 그가 알고 있던 것은 얼마 되지 않는데 밖으로 나온 세계는 너무 많아 혼란을 가져다준다. 물론 이것이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이기는 하다.
이야기는 방 속과 밖으로 나누어진다. 방 속에서 이 두 모자는 큰 부족함 없이 살아간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하지만 둘 만의 세계 속에서 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이것은 아이의 시선이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바로 이런 점이 아이를 조숙하게 생각하고, 부족함이 없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올드 닉으로 불리는 납치자의 방문과 삶을 아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 이 인식을 아이에게 한정하지 않고 사람들로 확대하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방 밖으로 탈출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시선이다. 아이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방 밖으로 힘겹게 탈출했지만 세상은 그들을 하나의 이야기 감으로 생각할 뿐이다. 비록 아이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집요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욕망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두 모자의 차이가 발생한다. 아이가 힘들어하면서도 하나씩 배우고 익히며 받아들이는 반면에 엄마는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과 해석에 힘겨워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 모자를 보기 때문이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그녀의 상황만이 아주 특별하고 잔혹한 것처럼 말할 때 “아이들뿐만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온갖 방식으로 감금돼 있어요.”(409쪽)라는 말로 우리가 못 본 채 가리고 있는 눈을 비판한다. 사회 속에서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사건들을 말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만약 이런 사건이 몇 번 더 일어나고 반복된다면 우리가 이런 사건도 눈을 가리고 있지 않을까 하고 순간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도 역시 깊이 있는 이해와 해석으로 풀어낼 수 있다.
잭이 방에서 탈출할 때 보여준 용기는 정말 대단하다. 엄마가 계획을 짜고, 반복된 연습이 있었다 하여도 겨우 다섯 살이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아이를 방 밖으로 내보내려는 엄마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지만 말이다. 엄마의 의지와 잭의 용기 있는 행동 때문에 엄마를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역시 성장이 어느 순간 멈춘 어른은 세상의 시선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제 우린 나왔는데, 내가 엄마를 구했는데, 엄마는 더 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449쪽)할 때 눈시울이 붉혀졌다. 그리고 그녀의 현재가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의 시선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세계다. 대부분의 소설가라면 아마 이 엄마의 시선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을 텐데 말이다. 이 부분은 정말 작가의 대단한 능력이자 통찰이다.
“우리는 문밖으로 나갔다.”(555쪽)란 마지막 문장은 아이가 인식하는 좁은 세계와 엄마가 받아들이는 세계의 어둠을 털어낸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문밖으로 한 발을 내딛었지만 단숨에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에서 희망과 밝은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들 앞에 펼쳐질 세계가 결코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가 바로 두 모자가 과거와의 이별을 선언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내가, 우리가 갇혀 있는 방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의 씨앗이 마구 자란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