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달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만난 작가다. 처녀작인 <야간여행>의 평이 좋아서 이 작품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화려한 광고 문구는 역시 이번에도 나를 혹하게 만들었다. 유럽 언론이 극찬한 21세기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라니 얼마나 대단한가. 결론만 말한다면 과연 그 정도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취향과도 관계있다. 하지만 추리소설로 읽지 않고 두 남자의 심리를 그린 소설로 읽는다면 또 다르다. 그들이 느낀 상실감과 두려움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킴모 요엔타가 아내 산나의 죽음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녀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의 추억과 아픔을 껴안고 살아간다. 그녀의 죽음이 확정된 순간에도 킴모는 예상했던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이 거대한 상실감은 그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미래이기에 그 충격은 더 커다. 이렇게 킴모의 상실감과 방랑과 혼돈을 섬세하게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킴모의 심리와 행적을 따라가는 도중에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베사 레무스. 한 가정집에 피아노 조율을 한 후 열쇠를 들고 나온다. 밤이 된 후 그 집을 찾아가 오야란타 부인을 베개로 질식시켜 죽인다. 첫 살인이다. 이 살인은 그에게 이전에 가지지 못했던 자신감을 가져다준다. 동시에 이것은 두려움에 의해 벌어진 살인이다. 살인으로 그는 자신감을 가지지만 두려움은 곧 되살아난다. 이제 자신도 제어하기 힘든 상태로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연쇄살인범들이 반복 살인을 하면서 결국 잡히는 것을 생각하면 그 결말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결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킴모는 형사다. 아내의 죽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그가 다시 현장에 복귀한 것은 아내의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서다. 충격적인 죽음으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에게 맡겨진 일이 바로 오야란타 부인 살인사건이다. 이 부인의 남편을 만났을 때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이것은 다시 뒤에 가서 반장과 연결된다. 이런 상실감과 사랑과 두려움은 이 소설에서 가장 깊게 다루는 주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스호스텔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긴다. 연쇄살인사건이다. 하지만 서장에겐 국회의원 살인미수사건이 더 비중 있는 사건이다. 제3의 피해자가 나타날 때까지 그들은 별개의 사건으로 취급한다. 킴모 형사를 제외하고 말이다.

만약 이 소설에서 에르큘 포아로나 셜록 홈즈나 CSI 같은 인물을 기대했다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좋다. 영미 형사소설처럼 액션과 총격전을 기대했대도 역시 마찬가지다. 화려한 수사기법으로 범인을 찾아내지도 않고, 미친 듯이 범인을 쫓는 열혈형사도, 범인이 남긴 단서나 살인방식을 보고 범인상을 추론하는 프로파일러도 없다. 다만 아내를 잃고 그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는 형사와 가정사 때문에 역시 고민하는 형사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두려움과 자신감이란 두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범인이 등장한다. 

이렇게 적고 보면 상당히 지루하거나 심심한 이야기인데 생각 이상으로 가독성이 좋다. 그들의 심리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상실과 두려움은 호기심을 불러온다. 화려함이 사라진 자리를 섬세하고 깊이 있는 심리묘사가 자리 잡았다.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상실과 두려움을 말이다. 그래서 이 감정들이 어느 순간은 피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긴박함은 없지만 간결한 문장과 내면으로 파고드는 심리묘사와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빠르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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