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튼
케이트 모튼 지음, 문희경 옮김 / 지니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리버튼 저택에 숨겨진 미스터리와 로맨스’란 문구가 사람을 혹하게 만들었다. 아흔여덟의 그레이스가 자신이 하녀로 일했던 리버튼의 저택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물론 이 회상에는 한 영화감독 우슐라의 방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회상은 그녀가 처음 리버튼의 저택에 하녀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1914년 7월이다. 하지만 이 모든 회상은 하나의 시간을 향해 달려간다. 1924년이다. 영국의 전원대저택에서 일어난 일상과 사건들은 하녀 그레이스의 눈과 기억을 통해 하나씩 되살아난다.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과 평생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있다. 그레이스에게 리버튼의 저택이 바로 그곳이다.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굶주리고 살던 그녀가 이집에 오면서 힘든 일을 하지만 깨끗하고 배부른 생활을 한다. 어린 나이의 그녀가 귀족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자기 또래의 주인집 아이들이 즐겁게 놀 때 그녀는 집안을 청소했다. 이 아이들은 하녀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서로가 유령처럼 움직인다. 물론 보고 듣고 하는 것은 있다. 다만 서로가 의도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자신의 위치를 계속 주입하는 문화 속에서 그녀가 품게 되는 생각은 한계가 분명하다.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 하는 부분을 보면서 그 시대의 단면을 살짝 엿보게 된다. 어떤 부분에선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런 위치 때문에 그녀는 이 소설에서 주연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물론 그녀의 삶도 중간 중간에 나온다. 하지만 리버튼이란 제목에서도 나오듯이 귀족집안의 영애인 해너 하트포트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모든 이야기의 끝자락에 위치한 1924년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녀 역시 시대적 한계 속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 채 말이다.

로맨스는 하트포트 집안의 딸 해너에게 집중되어 있다. 하녀 그레이스의 짧은 연애도 잠시 나온다. 미스터리는 크게는 1924년의 사건이고, 소소하게는 그레이스의 출생을 둘러싼 비밀이다. 작가는 로맨스를 바로 시작하지 않고, 약간은 뻔한 장면을 연출한다. 두 여동생과 오빠로 구성된 놀이가 다른 틈입자로 인해 깨어진다. 그 다음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한 소녀와 틈입자의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이 사랑이야기를 작가는 금방 시작하지 않는다. 한 집안의 몰락을 통해 다른 이야기를 만든 후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불같은 사랑으로 키운다. 그리고 이 사랑은 과거를 잊고 현재만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영화 <남아있는 나날>이다. 아마도 하녀 그레이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의 절제가 아주 돋보였던 영화인데 자신의 직업을 위해 사랑을 뒤로 미뤄둔 장면이 그 생각을 더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레이스가 자신의 출생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지만 분명하게 듣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인지 모르지만 출생의 비밀은 분명하지 않다. 1924년 사건 후 그녀의 삶이 아주 간략하게 나오는데 이 대목이 간략함을 넘어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남아있는 나날>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주기도 한다.

악몽과 상상과 추억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은 1924년의 사건이다. 이 사건을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널어놓았다. 하트포드가의 간략한 역사와 그들의 삶이 그 시대의 비극인 1차 대전과 겹치는 순간부터 뒤틀린다. 진실을 위한 장치를 곳곳에 심어놓았지만 왠지 모르게 짜임새 있다는 느낌은 없다. 마지막 편지에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되지만 오버한 연출이 아닌가 생각한다. 전체 이야기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 두 남녀의 불타는 사랑이야기다. 그 사이사이에 급변하는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왠지 강하게 와 닿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그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비극적인 1924년의 사건이 발생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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