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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낯선 작가다. 하지만 이 작가의 다른 장편 <리나>가 너무나도 좋은 평을 받아서 선택했다. 왜 <리나>가 아니고 이 작품이냐고? 그것은 바로 글쓰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서평을 올리기 시작한지 몇 년이 되었지만 최근에 정체감을 많이 느낀다. 처음엔 단순히 읽은 책을 정리하는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하나의 일처럼 되었다. 읽으면서 도저히 서평 쓸 수 있는 감을 잡지 못해 미뤄둔 책도 있고, 억지로 서평을 쓰면서 다시 그 책의 가치를 발견한 적도 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글쓰기는 하나의 공부이기도 하다. 멈출 수 없기에 계속 쓸 것이고, 좋은 문장과 책의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의 이런 글쓰기에 비해 소설 속 김 작가와 나는 전문가로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뭐 그렇다고 그들이 큰 성공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삶을 따라가면 글쓰기의 어려움과 함께 얼마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단순히 쓴다는 것을 넘어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어내고, 그 문장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보여줘야 한다. 화려한 수식어보다 사실에 충실해야 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내야 한다. 그것은 소설 속 ‘나’가 성장하는 속에서 천천히 깨닫게 된다.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문장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여고생 ‘나’가 중요한 것은 의지가 아니라 테크닉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나가 테크닉을 이야기한 것은 글쓰기 때문이 아니라 연애 때문이다. 강렬한 의지로 좋아하는 남자에게 들이대는 그녀를 어떤 남자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아름다웠다면 다르겠지만 그녀는 70킬로그램의 거구다. 그래서 연애 상대를 남자에서 여자로 바꾼다. 처음 선택한 R에게 연애편지를 보내지만 미친년 취급을 당한 후 그녀에게 오히려 연애편지를 보내는 K가 나타난다. 이 편지를 보면서 그녀가 쓴 글이 얼마나 조악했는지 깨닫게 되는데 사실 이 글도 나중에 좋은 글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그 사실을 모르고 연애에 목말라하던 그녀는 K와 사귄다.
이렇게 시작부터 그녀의 연애는 비일상적이다. 성 정체성 때문에 여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남자가 없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물론 뒤에 남자와 동거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으로 분명히 성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녀의 연애가 보통이 아닌 것처럼 집안 내력도 평범하지 않다.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것이나 아버지를 모르는 것은 두 번째로 해도 김 작가 불리는 엄마가 도통 딸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동네에서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지만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뛰어난 필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어떤 잡지사에 에세이 하나가 실리지만 단지 책 팔아먹기 위한 방편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리고 그녀 주변에 몰려드는 수많은 시인이나 작가라는 사람들 중 한 명도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물론 등단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책을 내지 못했다고 작가가 아니라거나 실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테크닉의 숙지로 남을 가르치는 정도 뿐 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가르침이 배우는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그 빛을 발하는 것은 개개인의 노력과 재능에 달렸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나와 김 작가의 글쓰기를 이야기하면서 나의 삶을 보여준다. 그녀의 삶은 주변 환경처럼 결코 쉽지 않고, 다양한 인생 역정은 훌륭한 글쓰기 소재가 된다. 하지만 그녀가 쓴 수많은 글들은 쓰레기라 불리고 버려진다. 이런 일을 경험하고도 그녀는 결코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쩌면 태어날 때 유전자 속에 심어져 있던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먼 미국에서 핵켄색 라이팅클럽을 결성했는지 모른다.
한 소녀의 성장을 글쓰기가 겹치면서 풀어낸다. 그 성장은 단순하지 않다. 많은 어려움과 경험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간다. 그리고 여자로서 엄마와 딸의 관계를 함께 이야기한다. 너무나도 무심한 엄마라도 그 속에 담긴 애정은 잔잔히 살아있다. 딸도 엄마의 병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온 것을 보면 혈연의 질김을 알 수 있다. 이 소설 속 ‘나’가 배우고 실천한 글쓰기에 대한 것은 사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나 에세이에서 한두 번 정도 본 것들이다. 하지만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쓴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아주 재미난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흠뻑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성공한 자들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변두리 삶속에 품어져 있는 열정과 사랑은 대단하다. 전문적인 작가가 되기 위해서 체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또 다른 직업인의 실체를 보여준다. 가독성이 좋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이다. 글쓰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기보다 작가 강영숙의 이름을 더 기억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