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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치조지의 아사히나 군
나카타 에이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8월
평점 :
정말 마음에 드는 단편집이다. 다섯 편이 실려 있는데 모두 마음에 든다. 다섯 가지의 사랑이야기가 주는 재미는 대단하다. 기발하고, 반전이 돋보이고, 구성이 재미나고, 사랑과 우정 사이를 생각하게 되고, 고개를 갸웃해본다. 각각 다른 분위기와 구성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의 평범한 우리들의 행동과 심리를 잘 그려내었다. 어쩌면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단숨에 읽었고, 벌써 작가의 다른 작품을 기대한다.
<교환일기를 시작했습니다!>는 기발하다. 처음엔 단순한 고등학생의 교환일기로 생각했다. 서로 사귀는 두 사람이 일상에 서로의 감정을 담아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중반부터 다른 사람이 둘 사이에 끼워들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교환일기가 여행을 떠나 여기저기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부분에선 그 기발함에 놀라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 속에 펼쳐지는 사랑과 성장은 대단히 재미있다.
표제작 <기치조지의 아사히나 군>은 반전이 돋보인다. 프리터 아사히니 군이 카페 직원인 마야를 우연히 헌혈 룸에서 만난다. 그녀에게 마음이 있던 중에 이 우연한 만남은 반가운 일이다. 이 일이 있기 전 카페에서 남녀 한 쌍이 소동을 벌이고, 화난 여자가 던진 의자에 아사히나 군이 코피를 쏟았다. 헌혈 후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데 결혼반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아이까지 있다. 나이는 아사히나보다 한 살 많다. 하지만 둘은 계속해서 만난다. 어떤 날은 아이까지 데리고 말이다. 불륜의 흐름이 이어질 듯한 분위기 속에 아슬아슬한 만남은 계속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 한 편의 서술트릭을 읽는 기분이 들고, 마지막은 슬픔과 불안이 잔잔히 흐른다.
<낙서를 둘러싼 모험>은 구성이 재미있다. 마지막 장을 가장 앞에 둔 후 첫 장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낡은 CD를 찾다가 발견한 유성 마커가 사쿠라이의 첫 사랑을 떠올려준다. 이 유성 마커는 학창시절 반 전체 책상에 낙서를 한 전력이 있다. 첫 사랑 도야마와 함께 말이다. 도야마와 교환한 번호로 5년 만에 첫 전화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받는다. 잘못 입력한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도야마의 연락처를 친구들에게 묻는다. 이 사이사이에 낙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소동과 이유가 드러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숨겨진 사실이 밝혀지는데 재미있고 흥미롭고 유쾌하다.
사랑과 우정 사이를 고민하는 남녀들이 나오는 단편이 <삼각형은 허물지 않고 둔다>다. 와시즈 렌타로, 시라토리 쓰토무, 오사나이 고토미가 바로 삼각형의 각 꼭지점이다. 와시즈와 시라토리는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친구다. 시라토리는 미소년으로 여학생들의 동경 대상이다. 그런 그가 같은 반 오사나이에게 반한 것이다. 시라토리에게 고백하라고 말하지만 감기라며 거부한다. 그런데 전개되는 분위기가 삼각관계로 흘러간다. 사랑과 우정이 충돌하고, 감정은 뒤로 감추고, 아픔은 가슴 한 곳에 묻어둔다. 이 미묘한 관계를 조용히 그려내면서 다른 작품처럼 마지막에 살짝 비밀 하나를 흘린다. 뒷이야기가 궁금한 작품이다.
<시끄러운 배>는 처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냐고? 제목 그대로 여고생 다카야마의 배가 엄청나게 크고 다양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배가 있나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 소녀의 고민이 주는 재미와 함께 놀라운 청력을 가진 동급생 가스가이가 등장한다. 시끄러운 배를 가진 소녀와 소머즈를 능가하는 귀를 가진 소년의 만남이라니 재미있다. 음악을 위해 가스가이가 다카야마의 배 소리를 녹음하겠다고 할 때 뭐 이런 황당한 놈이 있나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은 둘의 미래를 살짝 예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