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김녕사굴 설화를 배경으로 쓴 공포소설이다. 일본 미스터리 등을 읽을 때마다 부러움을 느낀 것이 바로 전설 등을 소재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밀클에서 한국설화를 소재로 한편의 멋진 소설을 내놓았다. 물론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공포에 대한 묘사와 캐릭터를 좀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초자연적인 현상과 현실과의 괴리를 충분히 압축할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명이라 캐릭터와 과장되지 않은 마무리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산악자전거 동호회 매드맥스가 김녕사굴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알 수 없는 기운과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암시로 간결하게 끝난다. 하지만 이 사건이 다음에 펼쳐질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퇴마사 진명이 등장한다. 그는 이전에 의대생이었고, 사랑하던 여자가 눈앞에서 죽고 귀신을 보면서 직업을 바꾼 인물이다. 그가 찾아간 곳은 의대 선배의 장례식장이다. 그의 죽음에 의문이 있던 그는 죽은 영을 불러낸다. 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보지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그렇게 선배 부인 금주에게 인사를 하고 장례식장을 떠난다. 어떤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이란 암시를 하면서 말이다. 남편을 잃은 금주가 이상한 꿈을 꾼다. 그 꿈은 너무나도 무섭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처럼 그녀도 한낱 꿈으로 무시한다. 그녀에게 호의를 보였던 차장의 죽음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죽음이 남편의 것과 유사하고, 자신을 둘러싼 일들에 공포를 느끼면서 무시했던 진명에게 연락을 한다. 이때부터 무녀의 저주와 귀신 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진명은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그의 활약은 형사나 검사 등에게 무시를 받지만 실제 상황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작가는 조금도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실제 일어난다면 발생한 사건을 그대로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이 부분은 이 소설이 지닌 강점 중 하나다.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 장면에서 사고를 당한 매드맥스 일원이 발견되고, 그녀에게 들어붙은 귀신이 중반에 등장한다. 여기서 진명의 첫 퇴마활동이 펼쳐지는데 결코 쉽지 않다. 초자연적인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무시무시한 능력을 펼쳐 보여주면서 덩달아 진명의 능력도 같이 보여준다. 진명의 퇴마활동은 <퇴마록>에서 본 퇴마사와 조금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희생자를 거의 대부분 구해내는 <퇴마록>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진행하는 와중에 등장한 방송국 PD는 약간 곁다리 같은 느낌을 준다. 나름 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비중이나 활약을 보면 아쉬움을 줄 뿐이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속도감이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구성 등은 최근에 본 한국 공포소설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앞으로 시리즈로 나와도 좋을 퇴마사 캐릭터 진명은 지금보다 다음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후반에 가면서 무녀 원혼의 의도가 쉽게 드러나는 대목은 역시 아쉽다. 무녀 원혼과의 대결이 긴장감이 약한 것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역시 한국 전통 설화를 소재로 하여 역사와 현실과 연관시키면서 공포를 자아낸 것은 박수를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