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는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읽을수록 그 매력이 묻어난다. 그 매력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중반 이후는 작가가 의도한 구성과 전개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역시 앞부분은 낯선 나라의 풍경과 삶이 약간은 지루하다. 비록 그곳이 우리와 너무나도 가깝고도 먼 일본이라고 하여도 말이다. 지루한 부분을 지나고 난 후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조심스럽게 작가가 심어놓은 단서들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시간적 배경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는 2차 대전 말 무렵이다. 1945년에서 이야기는 시작하여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첫 번째 화자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이브 아베 긴코다. 그녀는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낯선 시간 속으로 우릴 인도한다. 사실 그녀의 이야기는 아주 평범하다. 보통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시대는 보통 여학교의 삶을 용납하지 않는다. 공습과 기아로 친구와 가족이 죽고, 학생들은 가미가제 특공대를 위해 군수 공장에서 일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도입부지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기초와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야기는 한 사람의 화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소설 속 일기와 그 속의 소설이란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의 제목도 바로 일기 속 소설 제목인 <거꾸로 선 탑의 살인>에서 비롯한 것이다. 재미난 것은 이 소설이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쓴 작품이란 점이다. 먼저 첫 사람이 이야기의 도입부를 쓰고, 다음 사람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교묘하게 작가는 순서를 잠깐 바꾸고, 사람들의 혼란을 불러 올 작업을 조금씩 펼친다. 덕분에 중반까지도 그 미스터리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었다. 이브의 이야기가 미와 사에다로 넘어가면서 그 혼란을 더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약간 복잡한 구성이지만 읽는 데는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 전시 상황과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순수한 우정과 사랑은 한 편의 청춘소설을 읽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바탕 위에 세워진 미스터리는 공동 작업 소설로 드러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분량은 많지 않다. 이 부분은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다. 마지막에 가서 현실과 가상 세계를 연결시키는데 그 연관성을 쉽게 깨닫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작가는 충분한 단서를 제공하기보다 각각 다른 화자를 등장시켜 다양한 시각에서 사건을 보게 만든다. 이런 점이 중반까지 약간의 혼란을 가져오게 했다. 많은 책과 작가와 화가와 그림이 등장한다. 그 중에선 앙리 바르뷔스의 <지옥>은 가장 중요하다. 이 작품이 중요한 것은 바로 훔쳐보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 훔쳐보기는 사건의 중요한 요소다. 각각 다른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이런 시각을 조금은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훔쳐보기를 통한 사건 전개와 이에 대한 오해는 재미를 더한다. <지옥>은 이전에 읽었지만 취향에 잘 맞지 않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 조금은 아쉽다. 다음에 다시 읽고 싶다. 소녀들의 성장과 사랑과 우정을 다룬다. 감정이 풀려가는 속에 만나게 되는 소녀들은 순수하다. 전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분고분하게 살아간다. 아니 조금의 반항이나 돌출 행위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시대다. 이것은 패전 후 선생들의 행동 속에서 그 위선이 살짝 벗겨진다. 하지만 더 이상의 고민을 진전시키기보다 하나의 배경으로 활용만 한다. 이것은 다시 정신대라는 단어를 우리와 완전히 다르게 사용함으로서 두 나라의 간극을 더욱 극심하게 드러낸다. 아쉽지만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을 기대하기는 조금 무리다. 표지와 제목이 주는 섬뜩함이 소설에선 찾아보기가 힘들다. 액자 구성 속 소설에서 잠시 그 기미를 보여주지만 너무 잠깐이다. 미스터리 요소를 극대화시키기보다 비밀스럽고 미묘한 감정 묘사에 더 공을 들였다. 이 감정들이 미스터리와 결합하여 반전을 보여주는 마지막은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 감정이 순수하고, 그 순수함이 과격한 열정으로 비뚤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