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리 퀸
캐서린 머독 지음, 나선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참 미국적인 소설이다. 모두 읽은 지금 이런 생각이 든다. 큰 농장과 풋볼과 십대 소녀의 성장 이야기가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다. 미국적이지만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열정과 풋풋한 첫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 열여섯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디제이의 이야기는 작가의 능수능란한 묘사와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곳곳에서 웃게 하고, 행간에 녹아 있는 그들의 미묘한 감정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 소설이 시리즈임을 생각하면 한층 더 자란 디제이의 현재를 보고 싶다.

스스로 디제이로 불리길 원하는 그녀는 건장한 체격과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다. 농구팀과 배구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뜨거운 한여름 농장 일을 한다. 그녀에겐 두 오빠와 남동생 하나가 있는데 집안 내력으로 모두 건장한 체격이다. 열세 살인 남동생이 벌써 180센티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녀 위 두 오빠는 학교에서 풋볼 선수로 맹활약했다. 그것도 대단히 뛰어난 선수로 말이다. 아빠도 풋볼을 했고, 한때는 풋볼 코치를 했다. 집안에 자연스럽게 풋볼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 자란 덕분인지 그녀가 다니는 레드밴드의 숙적인 홀리 팀의 코치가 그 학교 후보 쿼터백 훈련을 그녀에게 부탁한다. 그가 바로 뛰어난 학업성적과 잘 생긴 외모를 지닌 브라이언이다. 하지만 그녀는 예전 기억 때문에 그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설정을 만들었을 때 우리가 예상하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이 맞는지는 천천히 읽으면서 확인하면 된다. 그들이 서로를 자극하면서 훈련하는 모습은 승부욕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간간히 삽입되는 이 장면은 굉장히 에너지가 넘친다. 그리고 그녀의 깨달음은 자신에 대한 조그마한 성찰이자 성장으로 발전한다.

디제이와 그녀 가족은 대화를 잘 못한다. 불리하거나 좋지 않은 상황이면 그냥 입을 다문다. 이 습관은 대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고 있다. 뜨거운 한여름 남들이 즐겁게 쇼핑하거나 여행을 할 때 열다섯 소녀는 농장에서 건초를 나르고, 소젖을 짜고, 농장을 청소한다. 유일한 일탈은 친구 앰버를 만나 맥주를 마시고, 농담을 하는 것 정도다. 이것은 브라이언 훈련을 돕는 도중에 조금씩 깨어진다. 그에게 지녔던 나쁜 기억은 사라지고, 호감은 점점 자란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와 대화한다. 결코 친구나 가족들과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을 말이다. 이 대화는 하나의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큰 한 발을 내딛게 만든다.

십대 소녀의 성장을 다루고 있지만 가족은 빠질 수 없다. 슈웽크 가족은 남들이 볼 때 화목해 보이지만 어느 집이나 가지고 있는 문제를 안고 있다. 두 오빠는 아버지와 다툰 후 대학으로 떠난 뒤 연락도 없고, 거구의 남동생 커티스는 필요한 말 이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을 입밖으로 내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하고, 속내를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힘든 농장 일과 이런 환경은 그녀가 좋아하는 브라이언이나 친구 앰버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내는 것을 힘들게 한다. 물론 이것 또한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다. 

소설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농장에서 송아지를 돌보고, 우유를 짜고, 건초를 나르는 일상의 반복을 다룬다. 이 반복 속에 좋아하는 소를 처분하는 것이나 손이 부족하여 농장이 지저분해지는 일 같은 현실이 담겨 있다. 이런 반복이 즐거울 사람은 없다. 그것이 십대 소녀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삶에 브라이언의 등장은 새로운 활력소가 된다. 이 활력소를 통해 성장하는 그녀를 보게 되는데 작가는 반어법과 위트를 수시로 사용하여 현실을 풍자하고 냉소를 보낸다. 간결하게 장면을 끊고, 빠르게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가독성을 높였다. 솔직한 속내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괜히 교육적으로 만들려는 장치는 빼버렸다. 그래서 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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