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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코 서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박영난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 편 한 편의 단편들이 재미있다. 독립적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은 앞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 순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각각 다른 화자를 내세운다. 그런데 이 모든 화자들이 한 곳과 인연을 맺는다. 그곳이 바로 <사치코 서점>이다. 이 서점의 주인 영감은 인상이 조금 고약하다. 눈썹이 10시 10분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 상당히 부드럽다. 외모는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와 닮았고, 책 파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노인과 만나 이야기하고, 노인을 통해 이어지는 사연들은 섬뜩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일곱 편의 단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수국이 필 무렵>이다. 60년대 도쿄의 서민동네 아카시아 상점가를 소개하고, 사치코 서점과 주인 영감과의 첫 만남을 보여준다. 이 만남이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동네 라면집 희락정 주인이 살해당한 일로 범인으로 오해받는다. 이 오해를 풀지만 그 과정에 드러나는 사연과 그가 라면집 앞에서 본 수상한 남자의 정체는 가슴 찡한 반전을 펼친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잘 살아 있고, 반전 뒤에 드러나는 또 다른 사연과 반전은 즐거움을 가득 준다.
<여름날의 낙서>는 한 형제 이야기다. 형은 골목대장에 책도 많이 읽은 뛰어난 소년이고, 동생은 이런 형을 동경하지만 천식 등을 앓고 있다. 평소처럼 딱지놀이를 한 후 집으로 오는데 이상한 문구가 적힌 낙서가 전봇대에 붙어 있다. 이 낙서의 의미를 깨달은 형과 마냥 순진하기만 한 동생의 호기심이 마지막 장면에서 풀리는데 섬뜩하면서 아련하고 감동적이다. 이 낙서를 운용한 또 다른 낙서가 사치코 서점에 붙여지는데 뒷이야기에까지 이어진다.
<사랑의 책갈피>는 마지막 반전이 낯익다. 주류상점에서 가족을 도와주는 구니코의 사랑이야기다. 그 당시 유행하던 밴드를 닮은 청년을 몰래 사모하던 그녀가 배달 중 사치코 서점에서 책을 읽던 그를 발견한다. 그 책은 랭보에 대한 난해한 책이다. 그녀는 책에 관심이 없는데 단지 그 청년 때문에 그 헌책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책 속에 책갈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이후 이 책갈피는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의 밀어로 발전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펼쳐진다. 이 반전은 그녀에게 젊은 날의 잊지 못한 멋진 추억을 남겨준다.
과연 여자가 이런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작품이 <여자의 마음>이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자신이 예전에 일했던 술집으로 피난 온 도요코 이야기다. 도요코가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담 하츠에의 시각에서 펼쳐진다. 약간 이상한 이 동네에서 또 하나의 괴담을 만드는데 그것은 도요코의 남편이 죽은 후 집으로 온다는 것이다. 뒤표지에 나오는 대화가 바로 이 단편에 실린 것이다. 예상된 파국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교차한다.
<빛나는 고양이>는 만화 지망생이 만난 고양이 영혼에 대한 이야기다. 시골에서 상경해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만화가가 되기 위한 그의 삶에 한 마리의 고양이가 파고든다. 풍족하지 못한 살림 속에서도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데 얼마 후 고양이 영혼이 그를 찾아온다. 이 영혼과의 교감과 놀이는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마지막에 다른 사실이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보다 만화가가 되길 염원하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는 지망생의 삶에 더 관심이 간다.
<따오기의 징조>는 죽음의 징표를 보는 남자 이야기다. 물론 이 작품도 회상으로 펼쳐진다. 그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은 과거 아카시아 상점가에서 늘 똑같은 노래를 틀곤 했던 그 레코드 가게다. 원래 가게 주인은 죽었지만 사위인 그가 변하는 시대 속에서 오래된 레코드를 팔면서 그곳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어떻게 이 가게를 맡게 되었는지도 알려주는데 이것은 그가 따오기의 징조라고 부르는 죽음의 징표와 관계있다. 이 징조를 둘러싼 섬뜩하지만 약간은 두려워 보이는 사건들이 현재의 인연으로 이어지면서 약간은 힘이 빠진다.
마지막 단편 <마른 잎 천사>에서 사치코 서점 주인 영감의 과거가 드러난다. 화자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남편을 둔 구미코다. 그녀는 서점 영감이 매일 방문하는 절과 그의 기이한 행동을 유심히 쳐다본다. 남편은 불평불만으로 작가들을 비판하지만 한 여류 시인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구미코의 행적은 그 동네의 바뀐 모습과 현재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만난 한 어린 소녀는 다시 앞 이야기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사랑과 용서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풀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