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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탐정 동물기
야나기 코지 지음, 박현미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시튼 동물기>를 정식으로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책 내용 중 일부는 여기저기에서 듣거나 읽은 적이 있다. 이 유명한 작품을 작가는 원작의 범위 속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재미를 이끌어내었다. 그것은 바로 시튼을 탐정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이 소설 속 시튼은 셜록 홈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건들은 바로 그의 동물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한 편 한 편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동시에 <시튼의 동물기> 내용 중 일부를 알게 되는 부수입도 있다.
<카람포의 악마>는 <늑대왕 로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도입부로 시튼과 기자인 화자의 만남과 인연을 설명하는 장이기도 하다. 화자가 시튼을 인터뷰하기 위해 방문하는 장면은 셜록 홈즈에 대한 오마주다. 시튼의 관찰력과 추리력을 보여주면서 현재가 아닌 과거 속으로 들어가 살인사건을 해결한다. 이후에도 이어지지만 각 단편에 등장하는 동물들이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용한 인간들의 살인을 다루고 있다. 이런 설정은 자연주의자였던 시튼의 사상을 그대로 투영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연작으로 이어지게 만들기 위해 화자가 근무하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즈> 편집장은 첫 이야기에 대한 열렬한 호평으로 다음 이야기를 요구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실버스팟>이다. 실버스팟은 까마귀다. 이 까마귀가 물고 온 다이아몬드를 배경으로 사건을 풀어내는데 사실 쉽게 범인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까마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 소설이 얼마나 셜록 홈즈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한지 홈즈의 대사를 그대로 인용하여 보여준다.
<숲속의 다람쥐>도 역시 쉽게 사건을 쉽게 풀 수 있다. 작가는 어렵게 사건을 꼬아놓기보다 셜록 홈즈와 <시튼 동물기>의 결합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건이 아니라 도입부에 신문 기사를 비판하는 장면이다. 진실이나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사실의 일부만 도려내어 오해를 불러오거나 왜곡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몇몇 신문기자들과 신문사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다람쥐를 통해 드러난 진실이 범인을 알려주듯이 현실에서도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신문이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이 연작집에서 유일하게 시간을 거꾸로 올라간 작품이 <외양간 밀실과 메기 조>다. 시튼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데 그의 탁월한 관찰력과 추리력이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 알려준다. 두 개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나이 탓인지 다른 사건에 비해 조금 가볍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탐정 실력은 그 떡잎을 알 수 있게 만든다. 달걀 이야기에선 좋은 달걀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되고,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그의 명성 탓에 동물 탐정 비슷한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런 일 중 하나가 <로열 아날로스탄 실종사건>이다. 니카보카 고급고양이 및 애완동물협회 주간 품평회에서 만장일치로 일등상을 탄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고양이의 놀라운 능력도 흥미롭지만 부유층의 헛된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이 더 많은 재미를 준다. 요즘이라면 고가브랜드에 혹한 수많은 사람들이 아닐까?
<세 명의 비서관>은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적에 동조하는 내부의 적을 찾으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시튼의 친구로 테오도어 루즈벨트가 등장한다. 그리고 어떤 동물이 나라의 상징 동물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시튼의 주장이 상당히 재미있다. 이전에 대머리독수리 말고 다른 동물도 나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만약 시튼의 주장대로 그 동물이 상징동물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킥킥 웃었다. 스파이를 찾아내는데 일등공신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작품인 <곰의 왕 잭>은 첫 번째 이야기와 닮아 있다. 동물을 이용해 살인사건을 조작한다는 설정이다. 역시 범인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과학자가 아닌 사람이 과학적인 용어로 정확한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에는 과장이 있기 마련입니다.”(242쪽)란 문장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정확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곰에 대한 정보는 역시 편견을 넘어 사실에 도달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역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시튼 동물기>다. 아직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이 연작단편집으로 그 재미를 간접적으로 누렸다. 끈기 있는 관찰과 조사와 열정과 사랑이 만들어낸 그 결과물에 대해 관심이 자연스럽게 가고, 그 동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 이상의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그와 동시에 작가가 이 흥미로운 결합을 계속 이어가면서 속편을 만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직 다루지 못한 <시튼 동물기>가 많이 남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