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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더니스 ㅣ 밀리언셀러 클럽 85
로버트 코마이어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작가의 이력을 보니 <초콜릿 전쟁>이 있다.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저질 기억력은 정확한 내용을 떠올려주지 않는다. 너무나도 호평이라 읽었는데 그 당시 그가 펼쳐 보여주는 세계가 너무나도 우리 현실과 멀어 보였다. 아마도 행간을 읽지 못하고 그 이면에 표현된 의미를 찾지 못했기에 그런 모양이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다른 밀클 도서 중에서 분량이 적었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단숨에 읽으려는 속셈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아니다. 중반 이후 속도가 붙기는 했지만 처음에 각 등장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인물은 두 사람이다. 세 명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연쇄살인범 에릭을 끝까지 쫓는 노형사 프록터 경위는 비중이 떨어진다. 물론 에릭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가장 많이 이해하고 가장 조심하는 인물이다. 그 바탕은 자신의 젊은 시절 마주한 연쇄살인범의 미소가 자리 잡고 있다. 형사들에게 평생 하나의 짐이 된다는 사건 말이다. 출연 비중이 적은 것이 중요한 인물 순위에서 밀렸지만 에릭을 이해하는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물일 수 있다. 에릭을 괴물로 부르고 긴장의 끈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왜 그가 노련하고 경험 많은 형사인지 알려준다.
부드러움에 중독되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에릭을 이해하는 것을 사실 나의 능력 밖이다. 그가 부드러움을 집착하고, 이것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보면서 놀란다.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충동과 열정과 격정에 휩싸여 행동으로 옮기는데 어떤 때는 불쌍한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제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의미다. 하지만 살인을 위해 준비하고 흥분에 들뜨는 모습을 보면 섬뜩하고 무서워진다. 불쌍함은 사라지고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어릴 때 시작한 고양이 살해가 여자로 이어지는 과정은 어쩌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발전 모습이다. 주변에 누군가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주었다면 혹시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너무 낭만적인 생각일까?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15세 가출소녀 로리다. 요즘 말하는 청순글래머 형인데 자신의 매력을 조금 팔아서 원하는 것은 얻는다. 한 인물에 갑자기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과 키스를 해야 하는 특이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록스타를 좋아할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분명한 연쇄살인범 에릭이라면 어떨까? 중반 이후 이 둘의 여행은 그런 점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언제 살인이 벌어질까 하고 말이다. 사실 후반에 이 둘의 미묘하게 연결되고 긴장을 주는 심리 대결과 묘사는 대단한 재미를 준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험을 느끼면서도 붙어 다니는 그녀의 행동은 부드러움의 또 다른 형태인 자애로움에 빠진 탓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일상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한 자유를 경험하는데 어쩌면 그녀가 그렇게 갈망했던 것이 평화와 자유와 애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소설에선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형사의 집요하고 끈질긴 노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형사는 있지만 중심이 아니다. 연쇄살인범이 살인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그것을 실행을 옮기는 장면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다만 이들의 심리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여줄 뿐이다. 내적 충동이 어떤 집착으로 드러나고, 그 집착이 어떻게 행동으로 옮겨지는지 말이다. 그들의 불우한 가정환경에 눈을 돌리고 그 속에서 원인을 찾아보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일부분 답이 될 수 있지만 아직 그 정확한 답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의 이해 한도 속에서 그들을 분석하고 이해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이해나 분석을 자제하고 있다. 그래서 더 섬뜩하고 아련하고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