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솔로몬 케인
로버트 E. 하워드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어릴 때 지금은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 슈워제네거 주연의 영화 <코난 - 바바리안>을 좋아했다. 헬스로 울퉁불퉁한 근육을 만든 그가 펼치는 검과 마법의 세계는 신비로웠고 재미있었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터미네이터보다 이 작품이 가끔은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영화의 원작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로버트 E. 하워드다. 그래서 <야만인 코난>이 나왔을 때 반가웠다. 하지만 원작 소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영화의 이미지 때문인지 아니면 조악한 번역 때문인지 모르지만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영화로 나온 이 소설의 원작을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영화 예고편을 보면 현실이 아닌 SF 영화 이미지가 살짝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대에 대한 혼란이 생겼다. 총이 등장하기에 19세기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는 17세기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다. 이런 착각을 뒤로 하고 읽다 보면 이 영국 청교도 솔로몬 케인의 활약에 빠진다. 그리고 그가 마주하는 모험과 액션과 원시적 공포는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구성인데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의 모험은 고대의 신비와 함께 살금살금 책 전체로 퍼져나간다.
솔직히 소설의 완성도는 부족하다. 강인한 의지를 가진 캐릭터의 매력과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펼치는 액션이 있기에 이런 부족함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미를 중심에 두고 있고, 그가 공부한 원시의 세계는 17세기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힘을 발휘한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고대의 신비와 공포와 전설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니 그가 만나게 되는 모험은 육체의 충돌도 있지만 마법과 정신의 대결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붉은 그림자>에서 만나게 되는 엔롱가의 마법은 고대의 신비와 공포를 그대로 담고 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이 때문에 이 단편집이 어떤 성격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시금 <야만인 코난>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처음 케인이 한 소녀의 죽음에 분노하고 복수를 맹세하는 것을 보고 괜히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성격상 특징이다. 선을 위해 악을 쫓고 무찌르는 그의 활약은 깊은 이성의 판단이 아니라 감성적이면서 본능적인 행동이다. 작가가 야만인이라 부른 아프리카 원주민들보다 더 야만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기준은 자신의 믿음이다. 그래서 가끔 불편한 느낌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흑인들이 백인인 그가 보여주는 무기의 힘이나 활약 때문에 신으로 섬기고자 할 때 자신도 인간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인간 솔로몬 케인을 만나게 된다.
솔로몬 케인의 능력은 탁월하지만 전능하지는 않다. 늘 죽을 고비를 넘기는데 이때마다 실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초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의지다. 무시무시한 원시적 공포를 대면했을 때나 중과부족의 세력에 짓눌릴 때조차 그 의지는 조금 굽히지 않는다. 죽음을 각오하고 앞으로 달려 나간다. 무모한 행동이지만 그 속에서 활로를 찾는다. 이런 엄청난 모험의 반복은 그의 정신과 육체를 더욱 단련시킨다. 거기에 일반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회복력은 그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동력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의 한계를 분명하게 만들면서 초월적이거나 환상적인 활약에 대한 기대를 애초에 꺾어버렸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시대의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느꼈다. 동시에 고대의 전설의 중세에 되살려 공포를 조성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알게 된다. 그리고 솔로몬 케인의 단편이 모두 열여섯 편인데 여기에 몇 편이 빠졌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낀다. 뒤에 실린 두 미완성 작품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결말이 예측되었는데 과연 맞을지 모르겠다. 이번 소설로 <야만인 코난>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 탓하기 전에 놓친 재미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단편 속 어느 것을 기초로 만들어졌을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