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잠들지 않는다 - 제4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양지현 지음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제4회 디지털작가상 대상 수상작이다. 사실 이 상에 대해 잘 모른다. 요즘 너무 많은 문학상이 있어 몇 개의 상을 제외하곤 신뢰도가 떨어진다. 그러다 이 작가의 이력을 보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세계에 매료되었다는 말과 그 흔한 주례사 비평에 빠져들게 되었다. 책을 들고 대충 넘겨보면서 시간을 가늠해 봤다. 얼마 걸릴 것 같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들고 읽었다. 역시 엄청나게 빠르게 쪽수가 넘어간다. 많지 않은 분량임을 감안하더라도 간략한 구성과 인물로 이야기들의 곁가지를 잘 쳐내었다. 지금 문득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이 생각나는데 이 작가도 단편을 쓰면 잘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어떨지?

고등학교 동창생들의 산행이 있은 다음 날 현직 수학선생인 박종혁의 두 친구 준석과 인호가 죽는다. 준석은 강도 살인사건으로 추정되고, 인호는 자살로 결론이 난다. 그런데 준석의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안창모가 현장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피살자도 낯익다. 그의 고등학교 1년 선배다. 안 형사는 단순 강도 살인사건이 아니라고 직감한다. 그때 듣게 되는 종혁과 인호의 이름은 과거 기억 속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유난히 친했던 세 명 중 두 명이 같은 날 죽고, 남은 한 명이 자신의 좋지 않은 기억과 엮이면서 그냥 덮일 수 있는 사건을 더 깊이 파헤치고 싶은 욕망으로 변한다.

작가는 이야기의 잔가지를 최대한 없앴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특징을 그대로 따라했다. 사건 관계자에 집중하고, 그 중심만 건드린다. 사건과 관계없는 인물이나 사실은 최대한 배제하고, 그 속에서 단서와 동기를 제공한다. 그러니 속도감에 밀려 대충 읽지 않으면 작가가 흘려놓은 단서와 동기 찾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면 탁월한 구성일 수도 있지만 트릭이나 반전을 생각한다면 안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 

트릭을 풀거나 동기를 찾거나 범인을 잡는 것보다 눈길을 끈 것이 있다. 그것은 안 형사의 수사다. 개인적인 과거 원한관계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무너지지만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인간적으로 느꼈다. 단서가 하나씩 나오고, 박종혁이 범인이 아님이 분명한 순간에도 결코 의심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조사하고, 실패하고, 추리하고, 조사하는 반복 속에서 그가 진실에 다가간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작가가 너무 단순하고 쉽게 이 과정을 처리하여 긴장감이 조금 부족한 것이 흠일 뿐이다.

제목에서 알려주듯이 기억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소재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이 서로 엇갈리고, 잊어버린 기억과 결코 잠들지 않는 기억이 충돌한다. 열정을 품고 있지만 십 수 년 동안 고백을 못하고 있는 종혁은 이런 관계 속에서도 가장 중심에 서 있다. 거짓이 드러나고 사실이 밝혀질 때 살짝 흘려 놓았던 단서가 무릎을 치게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조금 약하다. 너무 쉽게 흘린 탓이다. 물론 앞에서 이상하다고 느낀 부분이 분명하게 해명되는 순간도 있다. 해설자의 설명이 없는 야구 중계 속에서 직구만 던지는 투수 같다고 해야 하나! 길지 않은 텔레비전 미스터리 드라마로 만든다면 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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