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폰의 소설이란 것만으로 관심이 간다. 먼저 번역된 <바람의 그림자>를 보고 감탄했다. 극찬을 하는 흔한 광구 문구를 믿지 않았는데 이 소설은 예외였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은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그 책은 나의 추천목록에 올라갔고, 새롭게 나올 책을 기다렸다. 그러다 나온 신작 <천사의 게임>은 예상외로 평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뭐 나중에 읽을 것이 확실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의 3부작 중 첫 번째 소설이 출간되었다. 짧은 한 권이다. 집중을 위해 빈 하루를 선택하여 읽기 시작했다. <바람의 그림자>에서 독백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이번엔 편지다. 이레네에게 보낸 편지 속엔 과거를 떠올려주는 단어와 문장으로 가득하다. 이렇게 문을 연 후 이레네 가족의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후 빛에 쪼달리고, 생계는 막막해진다. 잘 살 때 친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등을 돌린다. 한 지인 르콩트 씨의 도움으로 조그마한 집에 살게 된다. 그러다 르콩트 씨가 아주 좋은 조건의 일을 소개한다. 크래븐무어라는 곳에서 한 장난감 발명가 집을 관리할 가정부 일이다. 독채를 내어주고 급여도 상당한 일이다. 이렇게 그들은 힘겨운 파리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새롭게 도착한 곳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좋은 곳이다. 발명가 라자루스는 친절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약속한다. 이제 그들의 고생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도착한 조그마한 마을은 앞집 사람이 재채기를 하면 금방 소문이 날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크래븐무어에서 일하는 한나는 이레네와 비슷한 나이고 수다쟁이다. 그녀를 통해 마을 소식을 듣고, 그 마을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레나는 이스마엘이라는 한 청년을 만나고 호감을 가진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이야기는 평화롭고 로맨스로 가득한 소설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등대의 전설과 알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크래븐무어가 다음에 뭔가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전해준다. 이 소설에서 그림자로 불리는 존재는 초현실적이다. 이런 설정이 단순히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것으로 처음에 생각했다. 라자루스가 만드는 장난감이 얼마나 사실적인지 알 수 없지만 과거 수준을 생각하면 허점이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등대가 있는 곳에서 발견된 알마 말티스의 일기와 한나의 죽음이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스멀스멀 피어나는 어두운 힘은 이제 소벨 가족에게 더욱 다가오고, 환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물리적인 힘을 발휘한다. 이에 대한 단서는 일기와 라자루스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 세계적인 대 히트작 <바람의 그림자>를 먼저 본 탓에 전작에 비해 힘이 조금 딸린다. 전체적인 분위기에선 비슷한 점이 곳곳에 드러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어른이 아니라 소년 소녀란 점도 비슷하다. 그들이 공포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모습은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로맨스 소설에서 스릴러로 변하고 마지막에 판타지 같은 결말로 이어진다. 약간 당혹스러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반전과 설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전체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다른 작품들도 출간될 예정이라니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