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사바이트 밀리언셀러 클럽 102
하토리 마스미 지음, 김미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뭔 말인지 전혀 짐작을 못했다. 책 내용 중에 나오는데 10억 기가바이트 용량을 엑사바이트라고 한다. 사실 이 정도 단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할 수 없다. 인간의 인식 한계를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위는 미래의 한 기업 이름이기도 하다. 그 기업이 표방하는 사업은 바로 이 소설의 기발한 설정인 비저블 유닛과 관계있다. 이 기계는 오백 원 동전 크기지만 사람의 시선을 따라 영상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장치다. 이 장치를 둘러싸는 벌어지는 일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가까운 미래에서 시작하여 현재로 온 이후 다시 먼 미래에서 마무리하는 구성이다. 프롤로그와 마지막 장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다. 사실 이 부분은 없다고 하여도 전체 구성에서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 친절한 설명 덕분에 하나의 의문이 풀리고,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약간 급하게 진행된 마무리의 미숙함이 살짝 가려진다. 

TV 프로듀스 나카지는 비저블 유닛을 활용해 성공가도를 달린다. 처음 그가 업계에 발을 내딛었을 때만 해도 별 볼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학창시절부터 모아온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는 그가 성공하게 만드는 발판이 되어준다. 이런 설정이 가능한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인터넷이나 졸업 앨범 등에 남기는 연락처가 사라진 시대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락처는 좋은 섭외력을 의미하고, 노력하고 재능이 뛰어난 그는 곧 성공하게 된다. 이런 그에게 한 여자가 다가와서 새로운 사업을 제의한다. 바로 엑사바이트의 실시간 세계사 프로젝트다. 이런 사업이 가능한 것은 바로 비저블 유닛이란 기계 때문이다. 이 놀라운 발상은 성공으로 이어지고, 이 성공을 두려워하는 미 정부조직이 고개를 들이민다.

비저블 유닛은 엄청난 기술을 상징한다. 자신이 본 모든 것을 기억한다. 일상생활에서 본 모든 것 말이다. 그런데 이런 장치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기밀문서를 본다거나 비밀 회담이나 저작권 등이 걸린 경우다. 이런 경우를 위해 이 장치가 기록하지 못하게 방해 전파를 발생하는 장소가 생긴다. 이것만으로 부족한지 다른 사람이 찍힌 경우 그 당사자의 동의가 없다면 재생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동의만 있다면 이 기록을 편집해서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을 사업에 활용해서 나카지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미래의 묵시론적 삶이 담겨있다.

흔히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검색 엔진이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매일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블로그나 미니홈피나 트위터 등에 쌓이는 정보는 점점 많아진다. 이 속엔 사실도 담겨 있지만 자신의 주장을 위한 왜곡된 정보도 담겨있다. 이것을 정확하게 판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에 비저블 유닛에 담긴 영상들이 변형될 수 있다면 어떨까? 유족에게만 이 정보가 상속되고, 100년이 지나야 공개된다고 하지만 말이다. 이 문제를 소재로 소설을 썼지만 작가는 100년이란 시간을 너무 맹신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상업적 가치가 있다면 법이 바뀌어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묵시론적 세계관과 최첨단 IT 기술을 결합한 이 소설은 절반 이상의 성공을 보여준다. 기발한 설정이 주는 재미와 미래의 삶이 어떤 식으로 변할까 상상하게 만든다. 가독성이 좋아 빠르게 읽히고, 이야기가 거의 직선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복잡하지 않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너무 단순화되어 아쉬움이 생긴다. 대결구도가 너무 간단하고 쉬워 뒤로 가면서 힘이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포착하고 덧씌워진 이미지를 경계하는 모습에선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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