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
김용규.김성규 지음 / 지안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다 읽고 표지를 보았을 때 읽는 내내 알지 못했던 한 가지를 발견했다. 표지에 침팬지가 울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전에도 보았는지 모르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그림은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다. 눈물의 의미가 무언가 하는 것과 왜 침팬지인가 하는 것이다. 가슴 속에 찡한 울림을 주고, 폭력에 의한 피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지식소설이라고 작가들이 규정한 이 소설은 쉽게 읽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하면 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 다니에 대한 묘사와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제니퍼의 현재와 과거사에 대한 것이다. 과거는 중국계 입양아인 그녀의 부모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해당한 것이고, 현재는 환경파괴에 의한 침팬지 사이의 학살을 다루고 있다. 제노사이드. 우리가 흔히 코소보 사태니 아우슈비츠니 하는 것들을 말할 때 인종청소를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선 생존의 터전을 잃어버린 침팬지 집단이 다른 지역을 침범하여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몇 번 이 장면을 보여주는데 잔혹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 외에 동족을 살해하는 것은 없다는 상식을 여지없이 파괴한다.

책 후기에 작가들이 말한다. 이야기 구성을 위해 침팬지 수화는 허구로 만들어 내었다고. 하지만 읽는 내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수없이 나오는 이론이나 연구 결과들이나 이제는 익숙한 제인 구달이 그런 묘사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다. 덕분에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지만 숙제도 한 아름 안게 되었다. 세계화와 사회진화론에 대한 허상을 씻어내게 되었고 칸트의 철학명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뭐 이 책과 관련된 책들을 꼭 읽지는 않겠지만 관심이 커져가고 새로운 사유의 장을 만들어줘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작가들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코소보 사태 때문이란다. 이로 인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많은 논의가 오고갔고, 폭력성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집단학살, 즉 제노사이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코소보나 아우슈비츠에 대한 글이 아닌 왜 침팬지에 대한 것이냐고 생각하게 된다. 저자들은 이에 대한 해답은 내놓지 않지만 역시 인간들의 직접적인 살인을 다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거나 소집단을 통한 연구가 더 섬세하고 직접적인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연구 대상이 많지 않지만 충분히 폭력성을 표현하는데 무리가 없는 존재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종을 찾기는 비교적 쉽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지식소설이라 말하여 어려울 것 같지만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이런저런 이론이나 연구 결과들이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불러오고 지식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거창한 이론이나 엄청난 활극은 없지만 잔잔히 흘러내리는 감정의 깊이나 인식은 가슴 깊은 곳까지 전달된다. 연구 대상에 감정이입이 되어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발생한 아픔과 비극을 보면서 제인 구달의 냉철한 탐구 방법은 경이적으로까지 느껴진다. 단순히 애정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이자 상대적으로 우월한 힘을 가진 존재로써 다른 종족에 개입하지 않는 그 인내력은 놀랍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 사람마다 평이 갈라질 것이다. 하지만 인정해야할 것은 외부의 개입으로 인한 좋은 변화보다 나쁜 변화가 더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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