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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맨스 랜드 - 청춘이 머무는 곳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10년 1월
평점 :
정확한 제목은 POSTCARDS FROM NO MAN'S LAND다. 번역본의 제목이 괜히 영화 제목 때문에 혼란을 가져온다. 책 소개를 보면 카네기 메달과 마이클 프린츠 상을 수상했다. 이것은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나에겐 낯선 작가다. 번역된 책이 한 권 더 있을 뿐이다. 그 책이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카네기 메달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한참 읽으면서 느낀 것은 과연 이것이 청소년 문학인가? 하는 의문이다. 분명히 제이콥의 나이가 열일곱 살이고, 헤르트라위가 열아홉 살이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그 나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생각을 내가 하는 것 자체가 청소년의 수준을 낮춰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암스테르담과 아른헴에서 벌어진 사건과 경험들을 나의 현재 시선에서 본 탓이다. 나의 학창시절과 너무나도 다른 환경과 경험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이 문장을 적으면서 떠오른 것이 있다. 이전에도 비슷한 글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야기는 제이콥과 헤르트라위가 한다. 제이콥이란 이름은 현재와 과거를 연결한다. 현재의 제이콥은 할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할아버지 제이콥은 2차 대전 당시 아른헴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독일군과 싸운 전력이 있다. 이때 제이콥이 헤르트라위와 만난 것이다. 이 인연이 제이콥 가족과 헤르트라위 가족을 이어줬고, 현재의 제이콥이 암스테르담까지 오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속엔 읽는 도중에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과거의 비밀이 하나 있다.
열일곱 제이콥은 가족과 쉽게 살아가지 못한다. 할머니와 산다. 그러다 헤르트라위 가족의 초대를 받아 엉덩이 부상당한 할머니 대신 암스테르담에 왔다. 그의 여행이 처음부터 즐겁지는 않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안네의 집은 아쉬움을 남기고, 길에서 본 여자의 매력에 끌렸는데 알고 보니 남자다. 거기에 잠시 놓아둔 옷을 도둑맞는다. 열심히 쫓아가지만 잡는데 실패한다. 이제 돈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한 노부인의 도움을 받는다. 덕분에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외손자 단의 집에 오게 된다. 이 하루의 일정으로 그의 여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거의 모두 만난다.
1944년 9월 17일. 이 날 하늘에서 영국군이 아른헴으로 강하한다. 네덜란드 시민들은 환호하고 열정적으로 환영한다. 이 사람들 중에 헤르트라위 가족도 있다. 그 집에 가장 먼저 도착한 세 사람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제이콥이다. 독일군에서 해방되었다는 즐거움은 곧 독일군의 역습으로 사라진다. 시내는 부상병들이 늘어나고, 영국군은 퇴각한다. 이때 다리를 부상당한 제이콥은 남겨진다. 그는 그녀의 보호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과거의 시간 속에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비정한 지 잘 드러난다. 죽음이 주변에 늘려있고,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잔혹한 묘사는 없지만 실명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죽음은 간결함을 넘어 가슴으로 파고든다.
과거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이야기라면 현재는 제이콥의 성장을 다룬다. 물론 과거 속에서 헤르트라위도 성장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다. 평화가 이어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바뀐 가치관들이 두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해진다. 순결, 미혼모, 동성애, 죽음 등이 수십 년 사이에 너무 급격하게 바뀐 것이다. 오히려 유럽 중에서 가장 자유롭다는 네덜란드에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현재의 제이콥이 빠진 <안네의 일기> 속 안네와 과거의 헤르트라위의 삶이 묘하게 겹쳐진다. 물론 현재 둘의 삶은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겪었던 전쟁과 죽음의 경험과 두려움과 슬픔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작가는 암스테르담이란 도시를 배경으로 다른 두 문화가 충돌하게 만들고, 한 소년을 성장시킨다. 과거의 기록을 통해 당연하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네덜란드 해방이 결코 단숨에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방황하고 고뇌하고 갈등하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현실적으로 상황을 이끌어간다. 제이콥을 둘러싸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개성 있고 암스테르담의 현재를 보여준다. 안락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보다 그 이후 남은 사람들의 삶을 더 부각시킨 것은 한 발 더 나아간 시각이다. 모든 이야기 중에서도 마지막에 알마가 한 말이 가장 와 닿는다. “왜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자주 노인들이 자신들만큼 인생을 감당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쩌면 자신들이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479쪽) 결국 진실을 감당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