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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표지의 첫 느낌은 강렬하다. 자세히 쳐다보면 거대한 손이 미로 속에 한 사람을 내려놓고 있다. 이 핏빛 표지가 의미하는 바가 무얼까? 띠지엔 배신과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의 이력을 생각하면 미로 속에 갇힌 사람들의 생존을 둘러싼 이야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그 생존 자체도 하나의 목적을 가진 것이다.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 중 몇 개는 예상한 대로지만 나머지는 예상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읽히면서 그 끔찍한 설정과 전개에 놀란다.
시작은 조금 평범하다. 한 남자가 자신도 낯선 곳에서 깨어난다. 어떻게 이런 곳에 왔는지 모른다. 비에 젖은 채 온통 선명한 심홍색으로 물든 세계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자기 옆에 놓여 있는 물통과 도시락과 파우치를 발견한다. 파우치 속에 게임기가 들어있다. 켠다. 화성의 미궁에 온 것을 환영하는 문자가 뜬다. 단순한 장난처럼 보인다. 계속해서 게임기는 정보를 내보낸다. 게임이 시작했음을 알리고, 그가 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배운 경험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움직이다. 그러다 한 사람을 만난다. 쫓아간다. 여자다. 그녀는 앞으로 펼쳐질 끔찍하고 참혹한 게임의 동반자가 되는 아이다.
이 둘이 움직여 다음 목적지로 간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각자 게임기에 규칙 등의 정보가 제공되어 있다. 대략적인 설명을 본 후 서로 네 방향으로 갈 곳을 정한다. 북쪽은 정보, 남쪽은 식량, 동쪽은 서바이벌 아이템, 서쪽은 호신용 아이템이다. 주인공 후지키는 낯선 곳에 있으므로 식량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때 아이가 북쪽으로 가자고 한다. 이렇게 해서 여기에 모인 아홉 명은 네 방향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얻은 것을 가지고 돌아오기로 한다. 이 선택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호기심을 자아낸다.
잠시 이 상황에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라면 어디로 갈까 하고 말이다. 아마 식량을 선택할 것이다. 지역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라면 식량 확보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선택은 최악이다. 최선은 정보다. 이 지역과 음식물 등에 대한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사막이 아니기에 많은 동물과 식물은 살아남기에 부족하지 않는 식량을 제공해준다. 거기에 게임 참가자가 가지게 될 것에 대한 정보까지 있으니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 선택만으로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 동물적 본능과 생존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다. 낯설고 황량한 이곳에서 생존을 위한 싸움이 시작된다.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한 노력이라면 뒤로 가면서 무섭게 변한 인간들로 인해 생존을 위한 것으로 변한다.
극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인간의 사악하고 잔인한 본성이 고개를 쳐든다. 그 과정에 가감 없는 묘사로 섬뜩하고 잔혹한 모습을 보여준다. 생존을 위해 도망치고, 인간의 감정은 이미 기괴한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 사람은 그 욕망에 충실한 덕분에 사람을 뒤쫓는다. 그 과정에 의문을 하나씩 흘린다. 예상한 것도 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도망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추적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게임북처럼 진행되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 해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 저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고, 심연 깊은 곳에서 마주한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하나의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놓은 동시에 새로운 의문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