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하다 케이스케 지음, 고정아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 그대로 한 고등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내용이다. 처음 그가 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 대신 수리를 끝낸 차를 인계받는다. 동시에 삼각 파우치를 받는데 그것은 휴대용 자전거 공구다. 이 공구를 보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웃 형에게 받은 경주용 자전거가 생각났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자전거를 꺼내어 수선한 후 만족감을 느낀다. 이때만 해도 그는 앞으로 펼쳐질 기나긴 자전거 여행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혼다는 고등학교 육상부 장거리 선수다. 이 설정은 그가 자전거를 타고 긴 여행을 하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어려움을 넘어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가 방송으로 장거리 선수들이 경주하는 것을 본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경험들은 실제 여행에서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하고, 가끔은 호승심이 일어나 무리한 상태로 이끌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그가 10대의 젊은 청소년인 것이 더 큰 이유일 수도 있다. 

그가 새벽에 일어나 평소와 달리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간 것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없다. 단지 새벽에 깨어났고, 완전히 운동 모드였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선된 자전거를 꺼내어 타고 새벽의 길을 달린다. 이 시간과 자전거로 달리면서 보는 풍경은 평소 등굣길에 경험했던 풍경과 사뭇 다르다. 새로운 경험이 시각과 온몸을 파고든다. 학교에 도착하여 늦게 온 부원들과 운동을 한다. 그러다 후배가 목마르다고 한다. 자전거를 가진 그가 음료수를 사러 간다. 열심히 부원들의 음료수를 사던 그에게 이 비용들을 자신이 결국 내야하고, 멍청한 짓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자신만 먹을 우유만 사서 밖으로 나온 후 아무것도 사지 않은 것을 비난받을 일을 생각하니 돌아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달렸다. 일교시만 지난 후 돌아가자고 한 것이 긴 여행으로 이어진다. 달리는 순간 그에게 시간도 공간도 이제 큰 의미가 없다.

그는 달린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다. 그냥 달린다. 달리며 한 장소를 스쳐지나가고, 그러다 다음 장소를 생각하고 달린다. 이 달리는 행위 속에 그의 젊음은 타오른다. 이상한 열기가 그를 사로잡고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걱정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문자 몇 통과 전화로 거짓말을 하고 달린다. 북으로 달리면서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을 생각한다. 첫경험과 지금 사귀고 있는 세나나 초등학교 친구였던 스즈키가 여자로 머릿속을 채운다. 달리면서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빨리 효율적으로 나아갈 것인가고, 멈춰선 후는 스즈키의 성숙해 보이는 매력에 끌린다. 세나와 스즈키에게 오고가는 메일의 내용은 다르다. 현재 여친인 세나는 아프다는 거짓말을, 스즈키에겐 자신의 모험담을 과장하게 표현한다. 

한 시간이 하루로 다시 며칠로 이어지는데 이 속에서 그는 뒤를 돌아보기보다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한다. 결국 돌아가야 하지만 충동과 열정에 사로잡혀 달려 나간다. 작가는 이 과정을 약간은 건조한 문장과 감정이입보다 거리를 두면서 진행한다. 달리는 과정 속에서 그가 겪는 경험들은 한때 나의 로망이었다. 가끔 온몸을 열기로 가득 채워 달려 나가길 바랐던 그 시절의 열정과 충동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되살아난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 현실에 안주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져 언제 돌아갈까 하는 걱정도 같이 생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당연히 그가 충동적으로 달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여자친구인 세나가 마지막에 보낸 문자다. 혼다가 생각하기에 모자란 듯하고 생각 없는 듯한 그녀가 그를 걱정해 보낸 문자 말이다. 그의 성적 환상이 깨어진 자리에서 온 이 예상하지 못한 문자는 그의 귀향을 부채질한다. 작은 비난이나 손해가 싫어 떠난 그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이제 너무 어른처럼 되어버린 지금 ‘달려라’는 그 말 속에 담긴 열정과 충동이 잠시 행복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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