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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1 - 神秘
하병무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하병무의 소설을 읽는다. 예전에 <남자의 향기>가 집에 있길래 단숨에 읽은 기억이 난다. 어렵지 않고 평이하면서 쉽게 읽히는 글을 쓴다는 느낌이었다. 그 후 한 권 정도 책을 더 산 기억이 나는데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소설은 나의 우선순위에 올라갈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을 선택했냐고? 바로 소설의 주인공이 광개토태왕이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는 학창 시절부터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좁은 한반도를 넘어 광활한 대륙을 웅비했기에 강한 자부심과 잃어버린 대륙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남겨주었다.
광개토태왕에 대한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그 유명한 광개토태왕비는 일제의 왜곡으로 항상 역사 논쟁이 벌어지고, 그 장대한 비석은 중국의 수중에 보관되고 있다.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라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기록된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시대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작가의 상상력이 필수적이다. 부족한 사료와 정보는 작가에게 축복일 수도 있고, 재앙일 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럼 이 소설의 작가는 어떨까? 좋은 평가를 주기 어렵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광활한 대륙의 정복자였던 호태왕이 39세 죽은 것을 작가는 새롭게 해석한다. 병이나 적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떠난 것으로 그려내었다. 이 하나의 설정을 위해 작가는 무리한 상황을 집어넣고, 정복자 광개토태왕이 아닌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인 담덕을 창조한다. 그가 만들어낸 담덕은 무패의 장군이자 정복자이자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태왕의 사실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단지 한 여자를 사랑하기 위한 초석일 뿐이다. 첫사랑을 향한 그 노력과 순정과 사랑은 그의 위대한 업적을 한 순간에 뒤엎어버린다. 과거의 시간 속 위인에게 현재의 관념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바로 여기서 역사소설이 아닌 판타지 로맨스로 바뀐다.
신비는 무신비기에서 무와 기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빛이 바랜 탓이다. 작가는 초반 설정에서 이 책을 조선족 노인이 땅을 파다 발견한 것을 디카로 찍은 후 한 역사학자의 노력 끝에 번역한 것을 올리는 형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책의 저자로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왕의 호위무사이자 내관이었던 두절이란 인물을 창조했다. 이 책은 그의 기록이자 회상록이기도 하다. 한 위대한 태왕의 기록이자 자신의 삶이면서 사랑의 흔적을 담아낸 것이다. 읽다 보면 가끔 가슴 아리고 뭉클하고 벅찬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것은 사랑과 위대한 업적 때문이다.
이전에 읽은 작가의 다른 책처럼 잘 읽힌다. 진도가 잘 나간다. 하지만 읽다 보면 논리에 맞지 않거나 역사적 사실과 다른 상황과 단어들 때문에 멈칫거리고 주저하게 된다. 광개토태왕을 너무 부각시키기 위해 적들이 너무 약하거나 쉽게 무너진다.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조세정책을 늘어놓거나 옥수수나 감자가 등장한다. 새롭게 연구되고 있는 고구려에 대한 해석을 곳곳에서 만나지만 고구려 왕가에 대한 시선은 너무 강경하다.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고증이나 사실을 따지면 너무 쉽게 무너질 상황이 보인다. 최근에 나오는 역사 드라마들이 판타지로 변질되어 역사 왜곡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이 소설을 한 위대한 남자의 순애보로 읽는다면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추상적이었던 광개토태왕의 진정한 실체를 알고자 했다면 잘못된 선택이다. 아니 일정 부분에서 그의 위대한 업적이 나오니 그 부분은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실망이 작가의 실수보다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