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암살사건
김재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고마운 것은 역시 한글이다. 주변에 영어가 난립하고 일상 언어에서 영어 단어 한두 개가 빠지면 대화가 되지 않는 현실이지만 상당히 고마운 문자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익숙한 덕을 본 것도 있지만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을 생각해도 문자 측면에서 많은 이익을 본 것은 사실이다.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그 수많은 한자들이나 약자들을 외워 사용해야 했을 것이고, 일본이라면 이상한 발음으로 지금도 좋지 않은 영어 발음을 더욱 망쳤을 것이다. 이런 고마운 글자 한글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나왔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또 다른 소설인 ‘뿌리 깊은 나무’를 먼저 읽은 상태에서 사전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지고 보았지만 역시 다루는 시간이나 공간뿐만 아니라 핵심이 되는 주제도 다르다. ‘뿌리 깊은 나무’가 훈민정음 창제를 방해하는 세력과의 다툼을 다루었다면 이 소설은 훈민정음 창제의 뿌리에 대한 논쟁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집현전 학자들과 세종대왕의 노력으로 탄생했다는 훈민정음이 동북아 삼국의 시점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중국학자들은 자신들의 언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주장하고, 일본학자들은 자신들의 신대문자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선 일부 학자들이 고조선의 가림토 문자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각기 자신들의 의도에 의해 바뀌는 논쟁이지만 작가는 처음부터 이 소설의 시작을 음모론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정설로 전해지는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이야기를 <훈민정음 원류본>이라는 문서를 둘러싼 비밀을 내세워 훈민정음뿐만 아니라 한일 간의 역사까지 그 경계를 넓혀놓았다. 그리고 음모의 중심엔 일본 우익단체가 있다. 역사와 살인이라는 두 소재를 위해 주인공도 형사와 역사학자를 내세워 살인사건과 비밀을 쫓는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답게 빠른 장면 전환과 간략한 상황 설정으로 속도감을 내세우고, 한글을 이용한 수수께끼를 내세워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에 등장인물이지만 재미를 주는 것은 역시 <훈민정음 원류본>을 둘러싼 두 집단 사이의 대립과 경쟁이다. 누가 먼저 찾는가와 숨겨진 비밀은 뭔가 하는 긴장감이 유지되면서 빠르게 빠져들게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 것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고 민족감정을 고취시키며 몇 가지 새로운 정보도 제공한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특별한 것이 많지 않을지 모르지만 잘 알지 못한 이들에겐 좋은 지식이 될 것이 가득하다. 역사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얻게 되는 부수적인 수입이다. 하지만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지는 못한다. 속도감이나 빠져들게 하는 재미는 있지만 이야기 구조와 풀어가는 방식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지 못했고,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행동이 너무 전형적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기 때문인지 마무리까지 할리우드적인 것은 개인적 취향에 맞지 않다. 왠지 모르게 영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역사의 한 논쟁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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