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의미
마이클 콕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30년간의 결실은 대단하다. 하나의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였는데 읽으면서 이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방대한 자료와 충분한 조사가 주석과 내용으로 덧붙여지면서 가공의 세계가 현실처럼 다가온다. 한 인간의 집착과 철저한 복수의 의지는 그를 삼킨 사랑의 열정과 배신을 뛰어넘어 장대한 서사시로 변했다. 결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지만 계속해서 빠져들게 만들고, 질문을 던지게 한다. 

  

 

 편집자의 서문 형식으로 시작한다. 19세기의 고백록으로 여겨지는 이 책을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발굴하고 편집하여 책으로 내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문을 연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이 살인에 특별한 의미는 있지만 피살자에게 원한이나 다른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에드워드가 자신이 복수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살인을 잘 할 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얼마나 복수의 의지가 강했으면 무고한 사람을 선택하여 연습으로 살인을 했겠는가! 이렇게 해서 장대하고 처절하면서도 애절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19세기 영국의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소설이 보여주는 세계는 살아있는 듯 생동감 있고 현실적이다. 주인공과 필생의 적인 포이보스 돈트가 지닌 문화적 배경과 취미와 직업 때문에 작가는 사실과 허구를 뒤섞어 19세기 문화와 그 이전 시대의 서적에 대한 연구가 펼쳐지고, 작품 목록이 첨부되고, 방대한 주석이 달린다. 이 모든 작업이 단지 한 작품 속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노력이란 점에서 30년 결실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지적 충족감을 강하게 준다.   

 

 학창시절 성공을 향해 나아가던 그를 방해했던 적 포이보스의 행위로 미래가 바뀌고, 우연히 발견한 출생의 비밀은 새로운 삶을 꿈꾸게 만든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한 그가 엄청난 가문인 탠저 경의 후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의 발견은 삶의 신비로운 반전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사실을 증명할 서류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때부터 그의 능력은 이 사실을 증명할 서류를 찾는데 바쳐진다. 그리고 하나씩 나오고 발견되는 사실은 그를 더욱 희망에 부풀게 만든다.   

 

 

 소설은 큰 두 줄기로 진행된다. 하나는 과연 그 출생의 비밀이 그의 착각은 아닌지 하는 것과 그가 왜 그렇게 복수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밝혀가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과거는 왜 그런 일을 해야 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만 이것은 나중에 그 이유가 밝혀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배신은 가장 높은 곳으로 그를 올려놓았다가 한순간에 가장 낮고 깊은 곳으로 떨어트린다. 사랑. 이 평범하고 위대한 이름 뒤에서 펼쳐지는 음모와 살인과 복수는 대단한 작업이자 즐거운 책읽기고 슬프면서 잔혹하고 충격적이다.   

 

 작가가 재구성한 19세기의 런던은 에드워드란 한 인물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주고, 생명을 불어넣고, 그 사회를 짐작하게 만든다. 복수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죽여야 했고, 그 처절한 의지 속에 숨겨져 있던 가슴 아프고 허망하고 무기력한 삶의 흔적은 읽는 동안 숙연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냉정하게 한 사람을 죽이는 첫 장면에서 그의 감정이 이제 메말라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단지 가슴 속에 살아있는 감정은 복수란 그 단어뿐이다. 그리고 밤이 범죄자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고, 밤의 의미를 음미하는 순간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적지 않은 분량이고 방대한 주석과 멋지게 만들어진 세계는 단숨에 읽기가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읽는 즐거움을 계속 준다. 읽으면서 생긴 의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만들고, 거짓과 사실을 구분하려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순간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한 한 남자의 처절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밤의 의미를 보여주는 그 순간 마무리된다. 하지만 작가는 이 이야기의 속편을 쓰고 있다니 매력적인 주인공 에드워드의 활약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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